우리가 잘 아는 `흥부전`은 조선 후기 서민들의 경제관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판소리로도 불리었고 소설로도 인기가 높았다. 심술보 형인 놀부와 착한 아우 흥부를 통해 변화하는 시대상과 노동과 부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고전이다. 이 형제의 이야기는 조선후기 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신흥 계급으로 떠오른 자본가와 자본주의에 관한 조선후기의 변화상을 담고 있어서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이들은 한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부가 양극화 되어 있다. 그것은 놀부가 유산을 혼자 독차지하고 아우를 내쫓았기 때문이다. 놀부는 부의 축적을 위해 비윤리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놀부는 `불붙는데 부채질, 장에 가면 억지 흥정, 집에서 몹쓸 노릇, 우는 아이 볼기치기, 무죄한 놈 뺨 때리기, 빚값에 계집 빼앗기` 등등 이러한 성품으로 재산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착한 아우인 흥부는 형에게 쫓겨나서 가난한 지경에도 부부금슬이 좋아 아이들을 많이 낳았다. 자식들이 많으니 이 부부의 먹고살기 위한 고생은 끝이 없었다.

흥부가 한 노동은 `정이월에 가래질하기, 이집 저집 이엉 엮기, 더운 날에 보리치기, 원산 근산 시초 베기, 술만 먹고 말짐 지기, 오푼 받고 마철 박기, 두푼 받고 똥재 치기, 한푼 받고 빗자루 만들기, 식전에 마당쓸기` 등등이다. 이렇게 온갖 일을 하여도 그들은 끼니를 굶기가 일쑤였다. 흥부 아내 역시 맞벌이를 하였는데, `용정방아 키질하기, 술집에 술거르기, 초상집에 제복 짓기, 제사집에 그릇 닦기, 언손 불며 오줌 치우기, 얼음 풀리면 나물 뜯기` 등등, 요즘으로 말하면 일용직으로 할 수 있는 잡다한 모든 일을 쉬지 않고 하였다. 당대의 화폐가치가 한 냥에 2만 원 정도라고 셈하면, 말발굽 박는 일에 1만 원, 똥 치우는데 4000원, 빗자루 만드는 데는 2000원의 임금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노동에 대한 대가가 지나치게 헐값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일을 해도 먹고 사는 일조차 해결할 수 없었다. 악덕 지주인 놀부에게 돈이 집중되고, 열심히 일하는 서민 흥부는 건강하고 지속적인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건전한 자본주의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제도에 이르기까지 폐쇄적이고 퇴폐적인 천민 자본주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천민 자본주의 현상이 심각해지면 돈에 의한 배금주의가 심화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의 속성적인 문화가 후퇴하므로, 경제는 물론 정치 또는 사회, 인간성까지 후퇴시킬 수 있다. 곧 자본을 수단으로 하는 비인간적인 문화가 증가하는 것이다. 천민 자본주의는 경제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직업 간 빈부격차를 심하게 만들며, 시민의 민생구조를 파탄나게 한다.

놀부의 경제관은 바로 이러한 천민 자본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징표였다. 조선후기 이래 서민경제가 발달하고 개인의 소유 확대, 자본주의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돈에 대한 비인간성이 점차 확대된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화폐는 서민경제까지 깊숙이 침투하였는데, 영조시대 화폐의 주조를 막으면서 오히려 물가의 폭등이나 국가 재정을 혼란시켰다. 이에 따라 놀부 같은 신흥부자들은 고리대금을 하면서 부를 축적해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그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천박한 논리로 사람들을 부리거나 돈에 기대어 윤리와 도덕, 사회를 무시하는 행태가 늘어났다. `흥부전`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비판한 것이다. 그래서 놀부는 돈을 잃으면서 모든 것을 잃는다. 그가 박을 타면서 잃은 돈은 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약 6억 2000만 원정도의 돈이었다. 그 돈은 결국 놀이패들, 팔도 무당 등 사회적 약자들의 반란에 의해 회수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박을 탔을 때 놀부는 집마저 똥으로 뒤덮이게 된다. `흥부전`에서 놀부가 패망한 것은 이러한 천민 자본주의적 속성을 지닌 인물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돈에 대한 각성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의 존재 유무가 삶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는 한 놀부에게 있어 행복이란 있을 수 없었다. 반대로 흥부는 가난 속에서도 가족의 힘과 돈의 소중함을 알며 건강한 품팔이를 하였다. 그리고 박속에서 나온 재물들을 동네 사람들과 분배하고 형제를 도와주며 부의 나눔과 공생의 길을 실천했다. `흥부전`은 돈에 종속, 지배당하지 않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누려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시대에 부의 재분배와 건강한 일자리는 더욱 필요한 시대적 요청이 되고 있다. 이를 위해 새 정부는 경제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이노믹스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재벌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국민 개인의 소득을 늘려 행복과 안정을 찾는 분수효과를 이루겠다는 발상은 본질적이고 바람직한 경제 철학이다. 대통령의 말처럼 `누구나 성실하게 8시간 일하면 먹고사는 것 걱정 없어야`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이를 위해 노사정 대타협이 절실하다. 야당은 하루빨리 내각이 구성될 수 있도록 범국가 차원의 인사 협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재벌 편에서 개혁을 늦추려는 놀부 심보를 가진 자들로 비춰지지 않을 것이다. 최혜진 목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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