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는 한국의 대통령제 헌법은 그대로지만 문재인 대통령에게서는 제왕적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론조사의 지지율이 80% 이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하던 것과는 거꾸로 했을 뿐인데도 그렇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초기 이런 지지율을 보이자 너무 높아서 겁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조금만 잘해도 감동을 받는 경향이 있다.

따지고 보면 박 전 대통령과 그의 부하들은 정말 바보처럼 했다. 목에서 힘 좀 빼고 부패하지만 않았어도 최초의 성공적인 여성대통령으로서 혁혁한 역사적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그의 실패는 당장 여성들이 입게 됐다. 총리나 장관은 몰라도 대통령까지 여성에게 맡기면 안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됐다.

그의 실패는 헌법도 욕되게 했다.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의 결함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처럼 여론을 불러일으켜 개헌의 당위성과 시급성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이건 오해다. 헌법은 그대로지만 아무도 문대통령을 제왕적 군림자로 보지 않고 있다. 이는 헌법 때문에 제왕적이 되지는 않는다는 반증이다.

따지고 보면 개헌론에는 몇가지 함정이 있다. 개헌을 하면 제왕적 대통령이 나오지 않고 부패나 권력남용이 없어질 것이라는 오해다. 이런 오해가 생긴 배경에는 실패한 측의 책임회피 심리 내지 계산이 있다. 사람 때문에 아니라 제도 때문이라는 핑계다. 또 국회의원들은 대통령권력을 약화시켜야 그들의 권력이 강화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욕을 먹고 있다는 사실도 잘 의식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지표에 의하면 정치는 국민의 지탄대상이다. 국회 지지율이 5%밖에 안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이쯤되면 탄핵이나 해산감이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헌법규정은 없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개헌은 이런 것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여야 정치인들에게 있어서는 개헌론을 통해서 정치혐오의 원인을 사람이 아니라 헌법제도에 전가하는 것이 공통의 이익이 된다.

개헌을 하면 좋은 정치가 나오고 부패도 없어지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 한 어떤 개헌도 좋은 정치를 가져올 수 없다. 즉 국회의원들이나 정치실력자들이 욕심을 적게 먹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난 대선에서 대선후보들은 벼라별 공약을 다 내놓았지만 정치개혁은 별로 없었거나 강조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치개혁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몫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당공천권은 만악의 근원이라고 할 정도로 지탄을 받아 마땅한데도 거론되지 않았다. 이유는 명백하다. 현역 국회의원이나 정치기득권자 누구도 이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공천권은 정치부패와 비리의 원인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이권이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공천권을 없애면 국회의원이나 정당간부를 할 맛이 없어진다. 정당은 국회의원을 공천하고 그 국회의원은 지방의원을 공천하는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막강한 지위를 계속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천권을 빌미로 정당에는 파벌이 생긴다. 파벌의 연합체인 정당은 국회의원의 정치생병을 좌지우지함으로써 국회의원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약화된다. 국회의원이 정당에 예속되어 자율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니 대통령과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할 수 없다. 특히 여당소속 국회의원들은 대통령과 일체가 되어 무조건 지지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결국 국회의 대통령 견제력이 약화되니 제왕적 대통령이 생기기 쉽다. 게다가 그런 국회에 대한 국민의 견제력도 약한 구조 하에서 한국정치가 잘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결국 대통령의 양심과 시민사회의 견제 밖에 약이 없다. 언론인·前 관훈클럽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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