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우리 지역행정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실행하는 선진국 제도가 하나 있다. 전문직 건축가가 공공건축물이나 정비사업 기획·설계 등을 자문하는 `공공건축가` 제도로, 서울에서는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 초기단계부터 건축전문가를 투입해 공공성을 높이고 도시경관과 어울리는 건축문화로 이끌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제도로 이미 프랑스, 일본, 네덜란드, 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선 보편화돼 있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 샤를드골 공항과 테제베(TGV) 역사를 건립하면서 공공건축가를 임명해 처음 기획부터 준공까지 했고, 일본도 1970년대부터 신도시 개발 때에는 총괄건축가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서울도 공공건축물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도시 공간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건축물 기획 단계부터 건축가가 직접 참여하는 `공공건축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는 전북 무주에 가보면 그 결과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른바 `무주 프로젝트`의 주체로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으로 화제를 모았던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의 흔적인 `안성면 사무소`와 디자인이 눈에 잘 들어오는 버스정류장이다. 그는 지역의 정체성을 되찾으려고 지역민들의 생활 속으로 직접 파고 들어, 건축을 시작했다. 새로 지은 면사무소의 외관이 기존 관공서와 판이하게 다르며, 주안점은 평면에 지역민의 요구를 적극 반영해 면사무소 건물에 공중목욕탕·보건소·물리치료실이 들어 있다. 그는 무주군 안성면에 공중목욕탕이 없어서 주민들이 승합차를 대절해 대전으로 목욕을 다닌다는 사실과 주민의 65%가 노령인구라 의료 서비스가 우선 시급한 것임을 알았고, 이를 서둘러 해결했다. 설계자가 지역에 머물면서 특성을 관찰해 이해하고, 건축물에 그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최초의 공익 건축가이다.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외관이 아닙니다. 건축은 시대 의식, 재료, 생활, 이웃과의 관계, 역사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측면만 강조해선 안 됩니다." 건축가 정기용이 이야기한 좋은 건축은 예쁘게 만든 개인적 건축물이 아니라 주위 공간과 조화를 이루며 인간적인 신뢰가 축적된 착한 건축이었다. 이렇듯 우리도 구청이나 주민센터를 새로 지을 땐, 인근주민이 꼭 필요로 하는 근린생활시설을 설치해 편의성을 증대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건축 예술과 공공 영역을 같이 다루는 공공 건축가제도는 그 외 부산, 포항 등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다. 관에서 집행하는 예산의 절반 이상이 건축과 연관된 집행이기에 반드시 공공건축가의 손을 거친 후 일률적인 형태로 집행된다. 예전에 대전에서도 역세권 개발을 하면서 공공건축가를 임명했으나, 아쉽게도 활용되지 못했고, 포항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게 시정건축가 제도로 활용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예산의 질적인 향상을 위하고, 효율성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공공건축가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유병우 (주)씨엔유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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