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는 중앙부처의 3분의 2가 입주해 있는 사실상의 행정수도나 다름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대로 행정자치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등 나머지 부처들이 이전하고 국회분원이 내려오면 정치수도로 불러도 손색이 없게 된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행정수도 이전과 국회분원 설치를 언급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그제 대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회분원이 아니라 국회 자체가 세종시로 옮기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밝혔다. 세종시는 앞으로 국회분원 내지는 국회본원이 이전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행정수도가 될 가능성이 높은 도시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일련의 흐름과는 달리 얼마전 KTX 세종역 신설이 사실상 무산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의 KTX세종역 설치 타당성 용역에서 비용대비 편익비율(B/C)이 나오지 않아 사업 추진이 무산됐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래의 행정수도와 정치수도에 KTX역사가 없어도 된다는 말인가. KTX 세종역 타당성 조사용역은 그 결과가 시민들에게 알려진 과정부터 석연치 않다. 국토교통부와 철도시설공단은 용역 결과를 언론에 발표하지 않고 세종역 설치를 반대하는 충북지역의 박덕흠 의원에게 슬쩍 흘리듯이 공개했다. 세종시와 대전시, 충남도, 충북도 등 모든 지자체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용역결과가 비정상적인 절차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철도시설공단이 박 의원에게 제출한 용역결과는 B/C가 0.59로 나타나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내용이다. B/C는 일반적으로 1 이상이면 경제성이 있고, 1 이하이면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결과적으로 철도시설공단의 용역은 충북지역의 논리가 받아들여지게 된 셈이다. 충북의 오송역과 공주역 사이에 세종역이 생기면, 오송역이 침체되고 역간 간격이 짧아져 KTX가 저속철이 된다는 주장이다.

KTX세종역 용역 결과가 알려진 시점도 애매하다. 당초 용역은 지난해 12월까지 마칠 예정이었지만 금년 4월로 한차례 연기됐다. 철도시설공단은 5.9 대선을 앞두고는 "4월까지 완료하겠지만 발표는 국토교통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고,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발표는 하겠지만 그 시기는 모르겠다"며 넘어갔다.

이제 와서 국토교통부는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국토교통부 자체적으로 KTX 세종역을 추진한 것도 아니고, 이해찬 의원의 요구로 한 일인데 발표를 한다 만다 할 기준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박덕흠 의원의 요구가 있었기에 철도시설공단에서 만나 자료를 줬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언론 공개에 대해서는 감감무소식이다. 이해 당사자인 세종시는 아직 국토교통부나 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어떠한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 세종시민들 사이에는 충북지역의 반발을 고려해 정치적인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말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KTX 세종역 타당성 용역은 그저 수요 예측 프로그램을 돌려봤는데 B/C가 나오지 않았다는 식의 설명으로는 납득하기 곤란하다. 세종시와 주변지역의 인구 증가치 등을 전망하고 교통수요까지 제대로 계산했다면 시민들 앞에 데이터 전체를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

철도시설공단의 B/C분석은 5.9 대선 이전에 조사됐던 사안으로 미래의 교통수요가 반영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국회분원 설치를 공약했고 남은 중앙부처의 세종 이전을 약속한 부분에 대한 예측도 누락됐다. 이 같은 수요를 반영할 경우 B/C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KTX 세종역은 굳이 B/C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미래 세종시 신도심의 인구 50만 명과 대전 유성·대덕의 인구까지 합치면 족히 100만 명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알다시피 세종시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여전히 행정수도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도시건축학적인 측면에서도 세계 어디를 내놔도 손색이 없는 명품도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상징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미래의 행정·정치수도, 세계적 명품도시에 최첨단 KTX 역사가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KTX 세종역 설치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은현탁 세종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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