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다시 봐줘야 하는 영화가 있다. 두 번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선명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바뀌거나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미 봤던 영화가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다시 봤다. 2012년에 개봉되었던 이 영화는 사실 왕이 된 남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마음을 얻은 남자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광해 대신 왕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하선은 광대다. 광대짓을 해서 사람을 웃기는 재주도 탁월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웃음을 보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웃음을 잃어버린 중전에게 다시 웃음을 찾아주려 한다. 하선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높으신 분의 웃는 얼굴만이 아니다. 그는 어린 궁녀 사월이의 얼굴에서도, 조 내관의 얼굴에서도, 그리고 자신에게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도부장의 얼굴에서도 웃음을 보고 싶어 한다.

하선은 궁궐 밖에 살고 있는 수많은 백성들의 얼굴에서도 웃음을 보고 싶어 한다.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토지를 더 많이 가진 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만든 대동법을 당장 시행하라고 명하는 이유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웃음을 찾아주고 싶기 때문이다. 명나라에 사대의 예를 갖추기 위해서 수만 명의 군사를 사지에 몰아넣으려는 대신들을 꾸짖고 군사들의 목숨을 보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이유도 백성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선이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중전이 웃으면 하선 자신이 행복해진다. 하지만 중전이 아파하면 그도 아픔을 느낀다. 사월이의 웃는 얼굴은 그를 행복하게 하지만 사월이의 울음은 그를 눈물 흘리게 한다. 백성들의 웃는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지지만, 백성들이 겪는 고초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통증을 경험한다. 하선은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기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하선은 공감하는 인간이다.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공감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신생아도 다른 아기의 울음에 공감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공감능력이 사라지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아기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공감능력을 갉아먹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권력이다. 권력은 권력을 가진 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그 결과, 권력의 맛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둔감해지고, 자신의 목표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권력은 또한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조망하도록 만든다. 한 연구에서는 실험 참여자들에게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읽을 수 있게 이마에 알파벳 `E`를 쓰도록 지시했다. 앞에 있는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려면 `E`를 뒤집어서 써야 한다. 즉, 앞에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E`를 써야 하는 과제였다. 결과에 따르면, 이전 과제에서 자신의 권력이 높아지는 느낌을 받았던 사람들이 권력이 낮아지는 느낌을 받았던 사람들보다 `E`를 뒤집어서 쓰는 과제에서 더 많은 실수를 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력의 맛이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하는 것을 방해한 것이다.

권력의 맛은 약자의 목표와 욕구에 관심을 잃게 만든다. 권력에 취하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공감능력도 쉽게 잃어버린다. 하선이 특별한 것은 왕의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 후에도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선은 왕이 되고 난 이후에도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웃음을 보고 싶어 하는 욕구를 참지 못한다. 중전, 사월이, 조 내관, 도부장, 허균이 모두 하선에게 마음을 내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그 사람을 지키려고 한다. 공감이 권력을 만들고, 그 권력을 지키는 것이다. 전우영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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