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근무하다보면 주변의 지인으로부터 어디가 아픈데 어느 병원을 가면 좋겠느냐, 어느 전문의를 찾아가야 하느냐를 물어보는 전화를 심심치 않게 받곤 한다.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질문 한 두 번 쯤은 다 받아 봤으리라. 이런 현상은 의사의 전문과목이나 경험여부에 따라 치료가 달라질 수 있고, 병의원 간 경쟁 심화로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치료에 대한 불신이 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아예 처음부터 큰 병원으로 가면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무조건 큰 병원이나 대학병원만 신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대형병원들은 언제나 환자들로 미어터지고 예약 없이 왔다가는 3시간 기다려 3분 진료 받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일차 의료에 대한 환자들의 불신은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가 지속적, 포괄적이지 않고 짧은 진료시간에 일시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춰 해결하려다보니 아무래도 의사의 진료보다는 검사에 더 신뢰를 보내게 되는데 있다. 의료기관간 의료시설이나 장비의 대형화와 고급화 경쟁이 심화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런 관행은 바로 자신의 주치의를 통해 진료와 상담을 하는 주요 선진국 국민들의 의료 이용 관행과는 사뭇 다르며 의료 이용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신뢰하고 이용할 수 있는 단골의사(주치의) 제도가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지난 4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19대 대통령선거 후보초청 보건의료 정책 토론회에서도 일차의료 활성화와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주요 주제로 부각되었다. 이 자리에서 각 캠프 보건의료 담당자들은 일차의료활성화특별법 추진, 전 국민 단골의사제도 도입, 단골약국을 통한 복약 상담‧교육 기능 강화 등의 보건의료 정책 방향과 공약을 수가체계와 연계하여 발표하였다.

단골의사(주치의) 제도는 환자-의사간 신뢰를 기반으로 의원과 대형 병원 간 역할 분담이 가능해져 국가의료제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등 만성질환자들의 복약 순응도를 높여 질병관리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유럽 선진국들에 비해 국가의료체계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소득수준의 증가와 함께 급속하게 높아지는 국민의 기대 수준에도 원인이 있겠으나, 단골의사제도가 없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자-의사간의 문제에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

우리나라에 단골의사(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면 주치의가 환자의 의무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므로 중복진료, 중복 투약, 중복검사 등의 부작용이 최소화 되고 만성질환자의 건강관리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환자의 합리적인 의료이용으로 의료자원이 더 효율적으로 쓰이게 되며 환자의 본인부담이 줄고 노인인구와 만성질환의 급증에 따른 의료비 증가에 잘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해 의료비 지출을 적정 수준에서 안정화 시키는 기능이 작동되어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 시키고 예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우리나라에서도 단골의사(주치의) 제도의 시범사업을 시도한 적이 있었고, 여러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대국민 홍보의 부족, 정부의 준비 소홀, 의사단체의 반대 등으로 인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말았다.

단골의사(주치의) 제도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제도 도입에 앞서 일차의료의 개념과 가치 그리고 주치의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 형성과 사회적 의제화가 필요하다. 또한 표준 일차의료기관 모형의 설정과 확대 일차의료 인력의 양성 지불제도의 개편 건강정보체계의 확립 등이 필요하다. 이때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거나 의료제공자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 현실에서 실행 가능한 방식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미 왜곡된 의료체계에 적응된 업무처리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어렵다. 관련 당사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작하여 단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보건의료의 공공성이 취약하다. 공공의료가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시장의 논리대로 경쟁을 강조하다보면 질병 치료 중심의 첨단 대형 병원들만 살아남게 된다. 의료서비스는 날로 상품화되어 구매 능력이 떨어지는 환자들은 의료 이용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이며 건강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 될 것이다. 의료의 공공성과 형평성 문제의 또 다른 과제인일차의료 활성화와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이번 대선 주자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이다. 그 해법이 단골의사(주치의)제도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하며 일차 의료 기관의 공적 역할을 감안하여 일차의료 전문의사 양성에 국가는 일정부분 책임을 지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유미선 충남대학교병원 약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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