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을 들뜨게 했고 즐겁게 만들었던 2002년 붉은 티셔츠의 추억. 단 하나의 동일한 색깔을 지닌다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마음으로 함께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계시였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흰색이라는 색상을 누누이 가슴속에 품고서 머릿속에서 지우지 말아야 했었다. 푸른색을 입을 때나, 노란색을 입을 때에도 우리는 흰색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미라(mirra) 같은 오랜 관습을 더듬거리며 백의민족이라고 소리 높여 외쳐야 했다. 그래서 오늘날 흰색은 입지 않아도 우리의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 고유의 색상이 돼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니, 2002년 월드컵 경기를 치르던 그날 우리 선수가 있는 경기장이나 주변으로부터 뜨거운 색깔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국 대형광장, 체육관, 그리고 식당, 백화점, 회사 직원까지 또는 점잖고 보수적인 집단이라는 공직사회까지 붉은 티셔츠는 혁명의 색이 아닌 신명의 색으로 당대 가장 잘 어울리는 패션이 됐다.

흰 바지에다 붉은 티셔츠, 청바지에다가 붉은 티셔츠, 양복에다 붉은 티셔츠 등 외출복·작업복을 가리지 않고 입고 다녀도 눈길에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입고 있으면 용기있는 젊은이 같았고, 모험정신이 배어 있는 벤처사업가처럼 인식됐다.

우리는 16강 이후 승리를 예측할 수 없었던 토너먼트 게임에서 단 한 번만 입을지도 모르는 붉은 티셔츠를 개인적으로, 혹은 단체로 구입하는데 주저하지도, 인색하지도 않았다. 축구라고는 그물이 출렁거리는 `골`밖에 모르는 할머니, 어린아이, 아줌마들까지도 무슨 운명인 양, 계시인 양 받아들이며 입어야 했던 붉은 티셔츠. 그동안 붉은 색은 무거운 이념 때문에, 딱딱한 이데올로기 속에 꽉 막혀 있었던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색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비로소 그 붉은 색이 지역간·세대간·남녀 간을 용해시키는 거대한 불랙홀임을 알았고, 우리는 비로소 그 붉은 색이 우리가 담을 쌓고 살았던 이웃의 긴장을 허무는 색임을 알았고, 우리는 비로소 그 붉은 색이 우리가 잊고 살았던 이웃의 마음임도 알았다. 우리는 비로소 그 붉은 색이 우리를 안에서 밖으로, 변방에서 중앙으로, 뒷줄에서 앞줄로, 꿈에서 현실로 나오게 하는 힘의 발원지이자 지향점임을 알았고, 우리는 비로소 그 붉은 색이 한국의 질서요, 한국의 평화요, 한국의 친절임을 알았고, 우리는 비로소 그 붉은 색이 한국이라는,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자긍심을 인식시켜준 색상임도 알았다.

그렇다. 5000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월드컵의 열기는 가장 아름다운 색, 가장 부드러운 색, 가장 질서 있는 색, 가장 친근한 색으로 어두운 마음을 밝히고, 답답한 긴장을 풀어헤치면서 태양같이 가장 역동적인 붉은 색으로 환하게 우리의 곁으로 다가왔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FIFA U-20 월드컵`이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기니를 3대 0으로 이기고, 이 대회에서 6번이나 우승했다는 아르헨티나를 2대 1로 꺾고 16강에 선착했다. 2002년 때 우리가 간절히 바랐던 1승을 올렸고, 그토록 염원했던 16강도 이뤘다. 꿈 같았던 8강도 넘고, 신화를 창조했다는 4강까지 올랐던 그 열정, 그 환희, 그 기쁨, 그 감격의 색상으로 다시 붉은 티셔츠를 꺼내 입자.

지금도 넓은 광장만 바라보면 작은 혼란 속에서도 큰 질서를 이루었던 그 물결이 출렁해 오고, 서로가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큰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그 함성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 속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대~한민국`을 외치면, 기분좋게 `오~필승 코리아`의 메아리가 화합의 혈관 속으로 툭툭 튕겨져 흐를 것만 같았던 아, 뜨거웠던 그날의 대~한민국 또 다시 재현하자.

- 박봉주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행정실장(시인·가람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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