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고찰의 시작은 단세포 생물에서 찾을 수 있다. 지구 최초의 생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약 38억 년 전 등장한 것으로 여겨지는 단세포 생물은 재미 있는 생명체다. 특히 흥미를 끄는 부분은 번식이다. 세포분열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낸다. 보통의 생명체가, 둘이 하나가 돼 또 다른 하나를 만들어 낸다는 점으로 볼 때 이질적이다. 때문에 단세포생물인 아메바, 짚신벌레 등의 몸을 나눠 맥(脈)을 잇는 번식 수단은 흥미롭다.
단세포 생물을 얘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생명체는 영장류다. 단세포 생물이 진화의 시작점이라면, 영장류는 정점(頂點)에 있다. 영장류 중 최고는 단연 사람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단세포 생물과 `극과 극`을 보인다. 번식은 특히 그렇다. 사람의 번식엔 남(男)과 여(女)라는 서로 다른 개체의 만남이 필수다. 둘이 하나가 돼 또 다른 하나 또는 둘 이상을 만든다. 환경 적응을 거쳐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진화한 대다수 생명체의 번식방법도 같다. 다만 사람은 도구 사용, 직립 보행, 사고(思考) 등이 강점으로, 모든 부분에서 다른 생명체에 비해 우위를 점한다.
그렇다면 `단세포와 다세포`, `아메바와 사람`이 갖는 가장 큰 차이는 뭘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 `분열을 통해 살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명제로 귀결될 것이다. 한쪽 (단세포)은 분열을 해야만 번식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쪽(다세포, 즉 사람)은 분열을 하면 생의 종지부를 찍는다. 이는 분열을 통한 번식은 보다 미진화(未進化) 됐다는 쪽으로 귀결된다. 반면 분열이 생의 마무리로 이어지는 쪽은 진화됐다는 해석을 낳는다. 분열을 해야 하는 쪽은 후진적, 분열을 피해야 사는 쪽은 선진적이란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로 볼 때 진화의 정점에 선 사람은 최상위 생명체라 불려야 마땅하다.
진화의 특색은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와 닮은 면이 없지 않다. 한국의 시작은 분열이었다. 8·15 해방 후 신탁통치안을 놓고 좌우 진영이 충돌했다. 찬탁, 반탁으로 나뉘어 싸웠던 한국은 결국 남과 북으로 나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됐다. 좌우 대립의 역사가 수십 년 이어지며 하나된 한국의 `생명`을 빼앗아간 셈이다. 대립은 남북 분단 이후에도 계속됐다.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한 남쪽 정부는 4·19, 5·18, 6·3 등 끊임없는 충돌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았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폭풍우와 세찬 파도가 지나간 뒤 민주적 진화, 즉 민주화가 정착되기는 했지만 근·현대사를 격동케 했던 고비들은 끊임없이 생채기를 남겼다.
상처는 수십, 아니 수백 년 대립의 역사 속에서도 치유되지 않았다.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었던 대선 전 다툼은 사드(THAAD) 찬반 논란 등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니 이 갈등의 씨앗은 싹을 틔워 새롭게 시작하는 정부의 `걸림돌` 이 되고 있다. `대선 불복`, `보궐선거로 인한 임기 단축` 등 법에도 없는 낭설(浪說)을 만들어 내며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얘기하듯 분열은 망국병이다. 집안 싸움에선 승패가 있을 수 없다. 특히 지금 한국은 안팎이 위기다. 경제난에 미국 패권주의, 북핵 등 위협요인이 산적해 있다. 총체적 난국이라 할 만하다.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한다. 대통령과 국민 모두가 하나가 돼 더 밝은 내일을 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획일화 되지 않은 여러 세력과 집단의 공존이다. 대선에서 이긴 쪽은 탕평을, 진 쪽은 협조를 해야 한다. 권력을 서로 나눠, 통합의 에너지로 써야 한다. 분열은 곧 망(亡)이다. 누구든 이유·근거 없는 다툼·분열을 획책해선 안 된다. 이는 진화의 가치인 적응과 복잡, 다양을 인정하면 해결된다. 진화의 최고점에 선 사람이 단세포 생물과 같이 분열로 사는 길을 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성희제 취재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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