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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량'이 몰래 그렸다던 윤증 초상 구경하세요

2017-05-23기사 편집 2017-05-23 17: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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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살아있다] 역사적 보물 다수 전시

첨부사진1태조강헌대왕어필(太祖康獻大王御筆)
충남역사박물관은 충남도 지정 유형문화재가 많은 수를 차지하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보물도 다수 전시돼 있다.

보물 제1495호이자 조선 중기의 학자 윤증의 정면 상반신상을 그린 '윤증초상'은 1711년 화사 '변량'이 그린 초본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사각형으로 검게 칠한 사방모, 선으로만 묘사한 상반신과 대조적으로 얼굴은 군데군데 선염을 가하고 금·은도 가미해 섬세하게 묘사했다.

윤증의 초상은 윤증이 83세가 되던 1711년(숙종 37년)에 그려졌다.

윤증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제자들과 변량은 윤증을 문틈으로 엿보며 3달만에 초상화를 완성했다.

처음에는 측면상 2본을 완성했고, 측면상을 토대로 정면상 1본도 완성했다. 윤증 자신은 생전에 초상화가 그려진 줄도 몰랐다고 전해진다.

'태조강헌대왕어필(太祖康獻大王御筆)'은 '성주도씨 종중문서 일괄'로 보물 제724호로 지정돼 있다.

1393년(태조 2년)부터 1397년(태조 6년)까지 '도응'에게 하사한 사령왕지 4매와 녹패 1매 등 5매의 고문서를 1첩으로 엮은 것으로, 문서에는 여말선초의 관직명이 혼재해 있다.

어보는 '조선왕보'가 찍혀 있는데, 이는 태종 이후에 '조선국왕지인'이나 '경국대전' 반포 후에 사용된 '시명지보'와는 다르다.

때문에 고문서 양식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도응은 고려말 충신으로 두문동 72인 중 한 사람이다.

고려 공민왕 시기 중대광 문하시중찬성사를 역임했으며 태조 이성계의 죽마고우였다.

조선 건국 이후 태조가 특별히 옛 정을 생각해 상장군에 임명했으나 사퇴하고 받지 않았다. 태조는 도응의 곧은 절의에 감탄하며 '청송당'이라는 호를 하사하고 도응의 자손을 등용하도록 명하기도 했다. 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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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윤증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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