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간으로 지난 18일, 세계 최대의 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칸에서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이 영화제 참석 도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별세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지석`, 그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전양준 평론가와 함께 지금의 부산국제영화제를 탄생시킨 주역 중 한 명이었다. 무엇보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라고 하는 당시로선 다소 생소한 위치와 직책이 갖는 활동을 통해 영화제가 축제인 동시에 당대의 사회문화적 차원의 다종·다양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무궁무진한 시선과 목소리를 표현하고 전달하여야 하는 일종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새삼 증명하고 각인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는 이미 오랜 선발주자로서 아시아에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던 일본의 `도쿄국제영화제`와 홍콩(당시엔 영국령)의 `홍콩국제영화제`를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후발주자인 한국에서 국제영화제를 안착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도전과 문제의 해법으로 `아시아 영화의 창`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정립하였다. 영화광이자 영화 연구가였던 그는 도쿄와 홍콩 모두가 정작 자신들이 속해있는 아시아라는 지정학적 존립의 바탕보다는 서구의 영화에 경도되어 있는 현실을 간파하고 부산국제영화제는 동아시아의 한 구석에서 열리는 그저 그런 특색 없는 국제영화제가 아닌 그 동안 주목받지 못하던 아시아 영화들을 세상에 알리는 허브로서의 역할을 자임하여야 한다는 영화제의 존립가치를 테제로 정하게 된다.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지향적 자세를 견지하며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여러 아시아 문화권의 영화인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동기부여의 장이 되어주었고 사회문화적으로나 산업적 측면에서나 새로운 영화의 흐름과 시장가치를 찾아내려 애를 쓰던 서구 영화계의 호응까지 이끌어내며 항만도시 부산이라는 지역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아시아 최고,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 영화계의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커나갈 수 있었다. 물론, 최근 몇 년 사이 지난 정권하에서 그가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과 압박 속에 놓여 있었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마치 자식과도 같이 여기며 키워왔던 축제의 광장이 온갖 간섭과 탄압으로 얼룩지며 훼손되어져 가는 걸 지켜보아야 했던 심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남았다. 자신이 제시했던 비전과 그 비전을 실현키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실천과 노고가 쌓여 이루어진 결실을 지켜내기 위해 아마도 그는 고통과 압박을 짊어진 채 버티어 내며 작금까지 왔을 것이다. 영화제는 영화를 매개로 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계, 세계와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어우러지는 축제이자 광장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실천했던 위대한 영화인의 죽음을 추모해 본다. 민병훈 대전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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