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계단은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넘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빛과

무엇도 부족하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편안함으로

서류를 들고 내려가고 있었어

그 화분!

층과 층을 잇는 계단참 창틀에 놓여있던

무심히 내려가던 발걸음이 돌려세워졌어

저 화분!

아담한 꽃을 심고 물을 주고 속삭이고 사랑했는데……

아침햇살에 부서지던 푸른 잎의 물방울

비밀스런 눈짓처럼 자라던 꽃대

아기 발자국처럼 자분자분 콧속으로 걸어들던 향기

소문이 지나간 자리처럼 모두 벗어버리고

표정도 비우고 바삭한 줄기 몇 점 세우고 있네

화분 하나도 그것이 놓이는 위치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의미. 그것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 것인지. 어느 날 화분 하나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훌쩍 자리를 옮긴 뒤. 어느새 창틀에 놓여진 화분 하나. 아래층과 위층을 잇는 계단참에서 생명과 생명을 이어주던 그것. 그러나 그 화분은 푸른 잎의 물방울과 꽃대와 향기에서 저 화분의 바삭한 줄기 몇 점으로 변했다. 어느새 그건 해탈 앞에 서 있다. 어느 누구 모르는 이의 손길에 의해 옮겨지는 과정을 거쳐서.

애초에 아담한 꽃을 심고 물을 주고 속삭이고 한껏 사랑했는데. 이제 와서 버려진 화분. 저렇듯 시선 속에 갇혀있다 그 시선에서 소외된다는 것. 그건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곁에 있던 그가 어느 날 우리에게 떠나가듯이 말이다. 화려한 봄이 우리 앞에 머물다 어느 날 구름처럼 사라져가듯이. 그런데 우리들 누가 가져다 놓은 지도 모르는 화분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이. 그건 어느새 우리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화분은 애초에 누가 그곳에 가져다 놓은 것일지. 누가 부모님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스승의 가르침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 것이었을지. 혹시 그것도 아니면 누가 몰래 내다 버린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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