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나의 영혼, 나의 마음, 환희, 고통

그대는 나의 안식이며 평화, 하늘로부터 내게 내려왔으며

그대의 사랑은 나를 가치 있게 해주고

그대의 눈빛은 나를 빛내주며 그대는 나를 높여주오

그대는 나의 선한 영혼, 나보다 더 나은 나. (슈만 `헌정` 중에서)

생(生)과 사(死)를 수없이 넘나들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온몸과 마음을 내던지기를 5년. 한 남자는 한 여자를 그렇게 사랑했다. 여자의 아버지는 손가락 부상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한, 장래가 불투명한 남자에게 9살이나 어린 딸을 보낼 수 없었다. 결국 기나긴 법정공방이 이어졌고 국가는 `법`보다는 `사랑`을 우위로 택했다. 남자는 그토록 절절한 사랑의 순간들을 노래로 만들었다. 그리고 결혼식 전날 밤 신부에게 헌정했다.

슈만과 클라라! 음악사 전체를 통해 가장 애절하고 강렬했던 러브 스토리는 이렇게 탄생했다. 1840년 9월 11일 슈만은 괴테, 바이런, 하이네 등 당대 최고의 쟁쟁한 시인들의 사랑의 시 26편을 정성껏 골라 `미르테`라는 연가곡집을 작곡해 클라라에게 바쳤다. 서양에서 결혼과 신부를 상징하는 꽃 `미르텐(myrten)`. `미르테`는 `미르텐`의 복수형이다. 이 가곡집의 첫 곡이 바로 불세출의 걸작으로 남은 `헌정`이다.

`시인의 사랑`, `리더크라이스`, `여인의 사랑과 생애`... 오직 클라라를 향한 사랑 하나로 태어난 이 불후의 걸작들은 예술가에게 사랑하는 연인이 얼마나 위대한 창작의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지 알게 해 준다. 결혼하던 해에 슈만은 평생 작곡한 248개의 가곡 가운데 절반을 훌쩍 넘는 양을 악보로 남겼다. 그야말로 사랑이 만든 기적이다. 그래서 1840년은 음악사에서 `노래의 해`로 불린다.

그럼 클라라는 누구인가? 1819년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클라라는 이미 10대 초반에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친 천재 피아니스트였다. 19세기에 그녀와 비견되는 피아니스트는 리스트 정도였다. 어디 피아노뿐이랴. 배우 뺨치는 아름다운 외모와 더불어 문학, 작곡에도 완벽에 가까운 실력을 뽐냈다. 여기에 슈만과의 사이에서 8명의 자녀를 낳아 길렀던 여장부였다. 정신병으로 온전치 못한 남편을 대신해 피아노 연주로 집안 경제를 책임졌고, 슈만이 세상을 떠나고 무려 40년을 혼자 살았던 `독일판 춘향`이었다.

클라라가 슈만과 함께 한 결혼 생활 16년 가운데 고작 5년만이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했던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클라라가 더 애달프다. 독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은 아직도 클라라가 부동의 1위다. 그녀는 19세기 모든 유럽 남성의 이상형이기도 했다. 너무도 완벽했다.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한 최초의 피아니스트가 클라라였다. 과거 독일 100마르크 지폐에는 클라라의 얼굴이 찍혀있었다. 대전의 음악살롱을 `클라라하우스`로 명명한 것은 극히 당연한 순서였다.

클라라는 슈만의 `헌정`에 이렇게 화답했다.

만일 당신이 사랑을 위해 사랑한다면,

그래요, 나를 사랑하세요!

나를 영원히 사랑해주세요,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겁니다! (클라라 슈만 `만일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면` 중에서)

대지가 소생하는 5월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5월의 하늘은 미세먼지로 뒤덮이고 올해는 급작스런 선거로 시끄럽다. 또한 우리의 살림은 점점 더 팍팍해져 간다. 물질은 정신을 우선해 잠시 삶을 뒤돌아볼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아 보인다.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달라는 19세기 식 사랑은 진부한 유산일 뿐일까?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아폴론적 이성과 디오니소스적 감성을 동시에 타고났다.

슈만의 `시인의 사랑` 첫 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름다운 5월에 꽃봉오리가 터질 때 나의 마음에도 사랑이 샘솟네.` 슈만과 클라라를 들으며 다시 한 번 사랑을 떠올려보자. 고성과 비방으로 얼룩진 세상에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우리가 잊고 있던 진실한 사랑을.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클라라하우스 대표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