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대선후보들은 앞다퉈 국가안보와 민생안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선은 끝났고 국민들은 그 공약을 가장 잘 실천할 것 같은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부디 새로운 지도자가 국민들의 바람에 걸 맞는 정치를 해 주시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 역사에서 이 같은 과제를 가장 잘 해결한 지도자는 누구일까?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세종대왕을 뽑고 싶다. 왠지 우리 느낌에 세종 재위시기는 태평성대가 계속되고 국가적인 위기가 없었을 것 같지만, 오늘날과 같이 경제적 위기와 안보 위협에 봉착했던 시기였다. 세종 즉위 후 해마다 가뭄 등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아 기근이 만연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으며, 초강대국 명나라가 과도한 공물을 요구하고 왜구와 여진이 국경을 침입하는 등 대외적인 위협도 받고 있었다. 세종이 성군으로 칭송받는 것은 위민정신을 갖고 이 같은 시대적 난제를 현명하게 해결했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같은 난제 해결에 조선의 최신 발명품들이 일익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세종은 재위기간 중에 화약무기 기술을 발전시키고 신기전·화차 등의 신무기를 개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대마도 정벌·4군6진 개척이라는 군사적 업적을 이루었다. 이러한 세종의 치적 덕분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으로 하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영토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글의 발명과 인쇄술의 발전은 농서, 의서 등 실용서적을 보급시키고 문화융성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기반이 되었다. 세종 때 개량한 금속활자 `갑인자`는 구텐베르크가 서양 최초로 발명한 금속활자보다도 빠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첨단기술인 천문학 분야에 투자하여 혼천의·간의를 개발하고 칠정산이라는 역법을 개발했으며 앙부일구, 자격루 등을 제작하여 정확한 달력과 시계를 가질 수 있었다.

측우기는 기상을 관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최근 가장 관심이 큰 기상현상은 미세먼지인데, 그 당시 가장 큰 관심은 강우량이었다. 1441년 4월 29일 세종실록에는 세자였던 문종은 가뭄을 근심하여 강수량을 측정하다가 측우기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는데, 세종과 문종의 위민정신이 이 시기 위대한 발명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정부는 1957년 바로 이 측우기를 만든 날(양력 5월 19일)을 발명의 날로 지정했다. 세종대왕이 수준 높은 발명품들을 바탕으로 태평성대의 초석을 만든 것처럼, 전쟁으로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상황에서도 창조적 활동을 통해 다시 한 번 잘살아보려는 국민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국민의 바램을 이루고자 노력해온 결과 우리는 서구에서 수백 년에 걸쳐 완성했던 산업혁명과 경제성장을 수십 년만에 이룩할 수 있었으며 세계 5위권의 특허강국,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제19대 대통령 취임과 제52회 발명의 날을 맞아 우리 선조들의 성공스토리를 회상해봤다. 오늘날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새정부가 발명과 함께 4차 산업혁명 완수라는 시대적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아가기를 기대해본다. 성공의 해답은 우리 선조들이 제시했듯이 국민에게서 찾아야 한다. 발명도 정치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이 원하는 것을 찾아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만 특허청 산업재산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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