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 프로그램 중에는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의 작은 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콘셉트의 예능프로가 인기를 얻기도 했는데, 한가롭고 여유 넘치는 여행지의 분위기, 눈 부시게 아름다운 바다와 노을,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각양각색의 사람들, 돈 벌기는 뒷전이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기쁨이 더 큰 식당사람들, 저녁이 되기 전에 영업을 마치고 바다에 뛰어 들어 물고기와 놀고, 수다를 떨며 저녁을 함께 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삶에 지친 우리네에게 대리만족과 휴식을 주었다.

필자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들과 함께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시청했는데 복잡하고 치열한 현실을 떠나 잠시나마 삶의 본질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책이나 드라마를 접하다보면 현명한 군주가 비록 가뭄에 콩 나듯 했지만 세종, 성종, 영조, 정조시대에 대한 평가를 태평성대의 시대로 묘사된다. 예술과 문화가 중흥하고, 식량 걱정없는 농업의 발전, 전쟁이 억지되는 강력한 군사력,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찾아보기 힘든 그야말로 백성들이 발 뻗고 자는 살기 좋은 나라가 조선조 500년 동안 약 150여년 유지된 셈이다.

왕조시대를 살아간 사람들과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삶은 많이 다를 것 같지만 또 근본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을 내부적인 면과 외부적인 면으로 대별해 본다면 내적인 측면은 건강, 혼인, 가족 관계가 있고, 외적인 측면은 국가와 사회, 직업, 대인관계 등이 있을 것인데 과거나 현재나 사람들이 원하는 삶의 형태는 많이 다르다 하더라도 인간은 궁극적으로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추구하므로 지향점은 같은 것이다.

다만, 왕조시대와 현대의 다른 점을 찾으라고 한다면 과거시대의 사람들은 수동적인 피지배자의 지위에 있는 운명이어서 성군이 나타나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은 그야말로 얻어 걸리는 행운이었을 것이고, 현재의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국가권력을 만들고 바꾸는 능동적인 지배자의 위치에 있다는 차이, 그리고 사람들 스스로가 사는 곳 즉, 국적을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들이 지난 몇 년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민가고 싶다`라고 하거나 국가권력에 맞서 촛불을 들었던 모습이 현대의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왕조시대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쳐 동족 전쟁 끝에 남북이 분리됐으며 산업화와 동시에 민주화운동의 시기를 지나왔다. 그 어느 시대, 어느 사건이건 국민들의 희생은 컷고 상처도 깊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크나 큰 사건들을 불과 100여년 동안 겪어낸 것이다. 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후대사람들이 태평성대의 시대였다고 할 리는 만무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열대지방의 휴양지에서 식당을 차려놓고 음식을 파는 그 단순한 화면 속 삶이 시청자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별천지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 국민들이 부정한 권력을 끌어 내리고 새로운 국정운영자를 채용한 것이다. 어찌보면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이렇게 멋진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미국의 노예해방도 그 시대상황을 놓고 보면 분명 혁명적이었지만, 온전히 국민주권주의의 원칙이 작동되고 실현된 사례는 세계역사상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격과 국민들의 지위가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큼 올라가는 것을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가 헤쳐나가야 하는 거센 파도가 아직 남아있고, 살을 도려내듯이 적폐의 환부를 청산해야 하는 고통도 남아 있다. 검찰개혁, 청년실업난 해소, 빈부격차 해소, 출산율과 고령화 문제의 대처, 북핵과 관계 정상화, 미래산업의 대비 등등등 한 둘이 아닌 전방위적인 개혁과 준비가 선행과제로 해결되어야 하므로 한동안 나라가 시끄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음습했던 겨울이 지나고 꽃피는 봄이 이제 온 듯 나라가 생기를 되찾고 있다. 예술과 문화가 중흥하고, 경제적으로 공평하고 단단해지며,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완화되며, 국민의 봉사자로서의 공무원이 다시 자리를 잡는 태평성대를 이제 다시 꿈꿔 본다. 신상훈 법무법인 명경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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