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소형화가 대세다. 소자를 작게 만들 수 있어야 전자기기의 소형 경량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노`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나노는 작은 것의 대명사가 됐다. 큰 것을 자르고 잘라서 나노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작은 것에 대한 산업현장의 욕구는 끝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도구를 쓰더라도 자르는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분자수준으로부터 합성하거나 배열해 나가는 방법을 추구한다.

큰 것을 잘라 패터닝하는 방법(top-down)이 물리적인 방법이라면 분자들을 서로 붙여 나가거나 배열하는 일(bottom-up)은 화학적인 방법이어서 아예 접근방식이 다르다. 물론 오래 전부터 화학은 연구발전 돼 왔지만, 화학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데는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일단 분자는 너무 작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다. 분자가 얼마나 작은 지, 감을 잡아보기로 하자. 알기 쉽게 우리 몸속의 분자를 상상해 보자. 우리 몸속에 있는 분자의 개수는 얼마나 될까. 우리 몸의 세포 수는 대략 10의 12승 개 정도로 알려져 있고, 각 세포에는 평균 10의 15승 개의 분자가 들어있다고 추측된다. 그렇다면 우리 몸속의 분자 수는 대략 10의 27승 개나 된다. 그 많은 수의 분자가 우리 몸속에 들어갈 수 있으려면 그 크기가 얼마나 작아야 하는지 우리의 감으로는 상상이 잘 되지 않을 정도다. 설령 그 전체 구조를 알아낸다고 해도 분자들을 붙여나가거나 배열해 인공적으로 사람을 만들기는커녕, 단 한 개의 세포를 만들어 낸다는 것조차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다.

최신형 전자현미경을 사용해도 작은 분자를 볼 수는 없으며 어떤 최신형 도구로도 분자를 잡을 수 없다. 다행히 각종 최신 분광학의 발전에 힘입어, 간접적인 방식으로 분자의 구조를 알아낼 수 있게 됐고, 화학자들의 오랜 세월에 걸친 노력으로 합성방법이 개발돼 왔으며 지금도 개발돼가고 있는 중이다.

나노크기라면 분자의 세계에서는 큰 분자에 속한다. 합성화학자가 구조적으로 복잡한 수십 나노 이상의 복잡한 분자를 합성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같은 분자가 일정하게 나열된 고분자나, 무질서하게 결합된 거대분자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여러 가지 산업에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응용 목적에 맞게 디자인 된 수십, 수백 나노크기 이상의 분자를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고, 또 할 수 있다고 해도 너무 많은 공정이 필요하다. 설령 실험실에서 가능하다 해도 공장에서 다량 생산하기는 쉽지 않고, 따라서 산업적으로 이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든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합성된 화합물(특히 유기화합물, 생체분자들은 대부분 유기화합물이다)의 내구성이 좋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식물에서 이용하는 광합성분자들은 끊임없이 빛의 공격을 받으므로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식물을 모방해 광합성분자를 합성해 낸다 하더라도 실제 산업에 이용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떻게 짧은 수명의 광합성 도구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해답은 끊임없이 자가수선(self-repairing)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그러한 수선과정까지 모방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강한 유기분자를 찾거나, 유·무기 하이브리드, 또는 무기화합물을 사용해 화학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이제는 과학기술이 발전해 웬만한 소재들은 원하는 대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될 것이다. 물질을 자르고 패터닝하는 물리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나노소재에서는 많은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더 작고 정교한 분자소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화학적인 방법으로 디자인하고 합성하거나 원리를 규명하는 일이 필수적이며, 이러한 분자소재의 연구개발은 아직은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최근 4차 산업 분야의 연구열기가 뜨겁다. 그러나 본격적인 4차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현재의 나노소재 기술보다 훨씬 작고 정교한 분자소재의 발전 없이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점에서 또 하나 감안해야 할 것은 화학소재의 개발은 소프트웨어나 기계장치보다 훨씬 어렵고 더딘 일이라는 사실이다. 전동주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소기업 (주)켐스트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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