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사건에 붙여지는 명칭은 처한 위치나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8월 15일이 광복절이라 부르지만 일본은 종전기념일이다. 저마다 처지에서 기록하는 명칭의 역사, 역사의 명칭인 셈이다. 명칭을 둘러싼 갈등도 첨예하다. 역사의 구비마다 명칭을 둘러싼 고달픈 시대이야기다. 반봉건·반외세를 기치로 1894년 농민들이 봉기한 갑오농민전쟁은 100년이 지나서도 동학농민혁명, 갑오농민항쟁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졌다. 국립 5·18 민주묘지를 조성하고 법정 기념일로 제정된 지 20년이 흘렀지만 5·18을 아직 광주사태로 칭하는 이도 있다. 이념갈등의 기울기가 명칭에 드리워 있다.

정부의 명칭 활용은 탁월하고 재빠르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명칭 개정을 대대적으로 단행한다. 내용을 혁신해 명칭이 바뀐 것인지, 명칭을 바꾸느라 내용을 달리한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 좋은 예가 미래창조과학부다. 일각에서는 전 정부가 만든 이름의 `창조과학`은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이 우주가 6000년밖에 안 됐다거나 진화론과 창조론을 같은 수준의 가설로 다뤄야 한다는 등 비과학적 주장도 들어 있어서 국가 기구 명칭이 대한민국 공신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함께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의 골격이 유지될 전망인 가운데 2013년 부처 창설 당시부터 비판을 받아 온 `미래창조과학부`라는 명칭은 바꿀 가능성이 높다.

천안에 한 근린 공원 이름을 놓고 지역사회에서 조용한 파장이 일고 있다. 천안 터미널 일대의 신부공원 이름을 두고 서다. 택지개발 당시 개발된 동네이름을 따 `신부공원`으로 불려왔다. 이 작은 공원에 의미 있는 건립사업이 이어지면서 대학의 어느 잔디광장을 민주광장이라 부르듯 시대에 부합하는 명칭으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공원에는 2015년 11월 천안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됐고, 이듬해엔 친일반민족행위자 규명에 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 조형물도 세워졌다. 오는 6월에는 1987년 충남 민주화운동을 상징할 `6월 민주화운동 30년 충남 기념표석`도 세울 예정이라고 한다. 공원 명칭 개명도 시대의 운명이 됐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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