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쓰기 시작하기 몇 시간 전,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꾹꾹 눌러 쓰던 받아쓰기처럼 혹여나 선을 벗어날까 싶어 조심스럽게 기표용지에 도장을 찍고 온 참이다. 아마도 이 글이 마무리 될 즈음에는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낙선자도 확정될 것이다. 이번 대선 일정이 확정되기도 전에 손석희 앵커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당선 가능성과는 현실적으로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그럼에도 출마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다소 짓궂은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심상정 후보는 아직 대선 일정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섭섭하다고 했다. 손석희 앵커는 빠르게 자신이 던졌던 질문을 취소했다. 이어서 심상정 후보는 민주정치 하에서의 선거는 당선자를 확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선거과정에서 유권자들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가 쏟아져 나오고 뒤섞이면서 큰 방향이 결정된다.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밝힌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큰 방향으로 모아내고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민의에 의한 통치로서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주권자인 국민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정치원리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정치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와 가치상대주의에 기초한 다양성 보장, 다수결의 원칙을 근간으로 한다. 민주정치에서의 선거는 다수결원칙으로 당선자를 확정한다. 그러나 당선자는 국민의 참여와 다양성을 보장하여 민주주의의 원칙을 관철시켜야 하는 더 중요한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지자만이 아닌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조화롭게 조정하고 큰 방향으로 유도하는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결국 손석희 앵커는 심상정 후보의 무모한 도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서의 선거가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질문한 것이다. 그 질문은 심상정 후보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향한다. 지금껏 우리나라는 양당 정치체제 속에서 다양성을 희생해 왔다. 단순히 좌와 우를 가르고 지역 갈등을 조장했으며 북한을 매개로 친북 프레임을 설정했다. 해묵은 논쟁 속에서 국민은 올바른 판단을 내릴 기회를 빼앗기고 자신이 원하는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일었다. 다수 후보가 대선을 치르면서 다수 정당체제의 밑그림이 만들어졌다. 토론을 통하여 성소수자 문제와 복지, 노동 등 다양한 주제가 오고 갔다. 그 내용은 고스란히 전파를 통하여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 SNS와 유튜브 등에는 대선 후보들의 토론이 연일 화제가 되며 논의가 형성되었다. 각 후보의 토론 내용과 태도 등은 지지율에 즉각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대선후보는 당선가능성만으로 대선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그 목소리를 주장하고 전달하고 국가의 방향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다.

대선 결과가 나왔다. 결과만 놓고 보면 여전히 양당 체제와 지역 구도를 극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건강한 보수라는 기치를 내세웠던 유승민 후보와 친노동 개혁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던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은 6% 남짓에 머물러 당초 예상했던 지지율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각 후보마다 주장했던,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외쳤던 요구사항들은 엄연히 남아있다. 대통령 당선자는 한 명이지만 대통령 당선자가 짊어져야 할 것들은 당선자를 지지했던 국민들만의 것이 아니다.

현재 시각 2017년 5월 10일 오전 2시 37분경.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으로 문재인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당선만을 위하여 이합집산 하지 않은 낙선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랑할 사람이 필요했던 시간. 온 국민이 짝사랑의 열병에 빠진 나날이었다. 탄핵과 대통령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국민의 불안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과 맞물려 있었다. 이념과 가치를 떠나 급작스럽게 다가온 대선정국에서 국민은 사랑할 사람을 찾았다.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제 해묵은 좌우프레임과 지역 구도를 벗겨내고 대한민국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재정립하기 위해 국민과 정치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새롭게 출범하는 문재인 정부가 국민들에게 짝사랑의 아픔 대신에 손을 맞잡고 함께 걷는 꽃길을 선사하길 바란다. 김우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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