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은 변론에 의해 이뤄진다. 변론이란 재판기일에 법원의 공개된 법정에서 양 당사자가 구술에 의해서 판결의 기초가 될 자료, 즉 사실과 증거를 제출하는 방법으로 재판을 심리하는 절차를 가리킨다. 민사소송의 원칙 중에는 변론주의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소송의 기초가 되는 자료를 수집하고 제출하는 책임을 당사자에게 맡기고, 법원은 당사자가 변론에서 제출한 그와 같은 자료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변론주의는 몇 가지 형태로 재판과정에서 구현된다. 첫째, 재판을 받는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 사실, 즉 서로가 모두 인정하는 사실은 법원이 증거를 조사할 필요도 없이 그대로 판결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자백의 구속력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법원의 사실인정 권능 자체가 배제되는 것이다.

둘째, 주장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는 당사자가 제출해야 하고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은 증거를 법원이 직권으로 조사해서는 아니 된다는 점이다. 원고는 돈을 대여했다고 하고 피고는 그 돈을 이미 갚았다고 주장하는데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는 당사자 스스로 통장거래내역을 제출하거나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을 신청하는 방법 등으로 할 것이지 법원이 나서서 그와 같은 자료를 수집할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 변론주의의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서 사실관계는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변론에서 주장해야 하고, 법원도 당사자에 의해 주장이 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재판을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당사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관계를 주장하지 않을 경우 그 사실은 없는 것으로 취급돼 불리한 판단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공사대금을 청구하는 사건에서 법원이 알아서 감정을 통해 기성공사대금은 물론이고 공사 중 발생한 하자보수금까지 일거에 정리한 후 대등액에서 상계하고 난 금액을 산정해 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원고는 적극적으로 기성고 비율을 입증해야 하고 피고도 시공상 잘못으로 인한 하자의 존재 및 그로 인한 하자보수에 들어갈 비용을 주장, 입증해 상계해줄 것을 항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위와 같은 변론주의를 일관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이 있다. 즉 진실발견을 위해 최선일 것이라고 믿고 세운 제도가 오히려 실체적인 진실의 발견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누리고 있는 시민들조차도 소송절차에는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소송과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관계를 충분히 주장하고 적절한 입증자료를 제출하지 못함으로써 억울한 판결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법원도 재판과정에서 그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 석명권을 행사하고 입증을 촉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진실 발견을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법원이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결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소송에서 억울함이 남지 않게 필요한 변론을 충분히 할 수 있게끔 돕는 제도적인 보완책이 고민돼야 할 것이다. 최지수 최지수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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