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즐기고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일반적으로 삶의 핵심이다. 먹고 사는 일에 바빠 눈코 뜰 새 없다가도 그것을 해결하고 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 여행을 하고, 스포츠에 빠지고, 영화관이나 맛집을 찾는 것은 분명 힘든 삶에 대한 즐거운 보상일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남들과는 다른 사람도 있다. 남이 따라 하기 힘든 고행을 사서 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나는 새와 물고기를 좋아한다. 석양의 들판에서 군무 추는 가창오리를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하모니카를 불거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 축구를 보는 것도 심하게 좋아한다. 젊은 시절 만난 사람 중에는 `길을 환장하게 좋아한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 답을 듣고, 왜 길이 좋은지 되묻기를 잊지 않았다. 길은 언제나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는 게 대답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말은 참 맞다. 보문산 수리봉 가는 산길도, 목달동 들판 한 구석에서 한적하게 걸을 수 있는 농로도 환장하게 좋은 길이니까.

낯선 사람을 만나 기호나 취미가 같으면 거리감을 줄일 수가 있다. 햇볕 따사로운 들판에서 씨앗을 뿌리다가 만남 사람도 그렇고, 낚시를 하다 무인도에서 만난 사람도 마찬가지다. 덧붙여 만약 그가 문학이나 미술까지 하는 사람이라면 십년지기나 된 것처럼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

다 죽어가는 기업 살리겠다고 정부가 세금 잔뜩 끌어다 수혈하지만 살릴 수 있을까요? 무서운 건 거기서도 누군가는 큰 득을 보고 있다는 거죠. 사대 강으로 대놓고 국민을 속인 건 과연 누가 언제 책임을 질지…. 우리 아들은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장가는커녕….

집에 차를 놓고 택시를 탔더니, 기사가 자식 이야기에 세상 걱정까지 덧붙여 늘어놓는다. 처음 한두 마디가 괜찮아서 내리는 순간까지 세상 비판에 마음을 보태었다. 수십 년을 가까이 지낸 친구도 때로는 이런 문제에 냉담하다.

누가 정치를 해도 마찬가질 거야. 다들 제 잇속만 차릴 텐데 뭐.

세상 이야기하면서 마음을 나누고 싶은 순간에 들은 얘기다. 함께 분개하고 싶은데 마음을 틀어막게 만든다. 법 혹은 공권력을 행사하여 누가 무엇을 했을 때, 우리에게 해가 생겼는지 득이 생겼는지 정확히 따져야 하는 것 아닐까? 다 똑같다는 것은 위험한 말이다. 자유시민이 옳게 판단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의 말처럼 들린다. 권력을 감시하는 일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어떤 취향의 사람을 좋아하느냐의 문제와는 정말 다른 것이다. 연용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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