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은 매우 부실하게 치러졌다. 우선 선거기간이 너무 짧았고 다른 이슈가 대선경쟁을 압도할 정도로 컸다. 선거기간 내내 박근혜-최순실 문제가 국민적 관심을 끌었고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과 전쟁위기 등 공포분위기가 이어졌다. 세월호 인양작업도 계속됐다. 유권자들의 눈은 너무 바쁘고 피곤했다. 좀 더 차분하게 후보를 검증하고 선별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언론보도와 TV토론의 문제점도 많았다. 여론조사와 판세분석이 주를 이뤘다. 유권자들은 경마를 보는 것처럼 게임을 즐겼다. 그러나 말은 탄 기수들은 경마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면 되지만 대선 후보들은 다르다. 특히 그중의 한명은 국가통치권을 쥐고 5년간 이 나라를 이끌어나갈 최고 지도자가 된다. 이제 내일부터 우리는 경마식 대선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TV토론도 모두 5자 토론으로 진행됐다. 미국처럼 될 만한 사람끼리 맞붙는 토론과는 달랐다. 5명이 똑같은 시간을 배정받아 공격과 수비를 하게 되니 토론의 깊이가 없고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권투경기로 친다면 5명의 선수가 링에 올라고 치고 받고 한 꼴이다. 재수 없으면 많이 얻어 맞는다. 중요한 대목에서도 시간에 쫓겨 제대로 파고 들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미국과 프랑스의 대선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보통 공화당과 민주당의 1대1 맞장토론이 이뤄진다. 다만 1992년에는 로스페로라는 무소속 후보의 돌풍이 불어서 3자토론을 했다. 당시 기업인 출신의 로스페로는 근 20%의 지지율을 보였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는 11명의 후보들이 토론에 참가했지만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결선투표를 실시했다. 참고로 1차투표 결과를 보면 1위 24.01%, 2위 21.30%, 3위 20.01%, 4위 19.58%, 5위 6.36%다. 즉 다자토론이지만 4위까지는 막상막하다. 또 결선투표에서는 최다득점자 2명을 놓고 토론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미국식 토론과 유사하다. 여기에 비하면 이번에 보여준 한국식 TV토론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TV토론은 후보들을 종합적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에 우리도 빨리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서 정착시켜야 한다. 결선투표에서는 50%이상의 득표자가 나오게 되므로 결과에 대한 승복을 용이하게 하고 대통령의 지도력과 국정장악력도 뒷받침될 것이다. 선거비용의 증가와 선거과정의 번거로움 등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으로서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다.

이번 대선은 크게 보면 두 개의 단순구도다. 정권교체 프레임과 안보프레임이다. 하나 추가한다면 미래프레임(양극단배제론)이다. 박근혜탄핵의 여파로 초기에는 정권교체 프레임이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안보프레임이 파고 들었다. 문재인후보가 1위를 계속하고 홍준표후보가 순식간에 안철수후보를 따라잡은 이면에는 이런 역학관계가 있었다. 따라서 정권교체 프레임으로 당선되는 후보는 박근혜탄핵의 최대 수혜자라고 볼 수 있는데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미 진행중인 사드배치라든지 한미동맹, 북한문제 접근에 있어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국회나 정국운영에 있어서 협치가 어려워질 것이다. 협치가 안되면 당장 정부구성이 안된다. 국무총리 인준이 안되면 장관 임명도 어렵다. 황교안총리를 유임시킬 경우의 논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새 정부를 정식으로 출범시키려면 새 총리가 장관을 제청하여 청문회를 거치는 것이 원칙이다. 헌법에 그렇게 명문화되어 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총리를 지명했다. 다시 그렇게 한다면 바로 적폐로 지적받기 쉽다. 선거 기간 중 가장 많이 먹혀들어간 구호가 적폐청산이라면 이제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새 정권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경우다. 또 새 정부가 기존의 정치제도 속에서 굴러가야 한다는 것도 문제다. 국회제도만 하더라도 그대로다. 3분의2를 찬성요건으로 하는 선진화법 조항을 그대로 두는 한, 새 정권도 공약을 지킬 수 없고 이러한 기대미달이 축적되면 또다른 정치위기를 낳게 될 것이다. 순천향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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