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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삶…상처받은 사람끼리 부비며 살아야죠"

2017-05-07기사 편집 2017-05-07 16:24:45

대전일보 > 사람들 > 충청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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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오디세이] 이재용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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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 사실 나도 궁금하다"라는 이 문제적 영화감독이 내디딜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 이재용 감독은 충무로에서 독특한 존재로 손꼽힌다. 데뷔작인 '호모 비디오쿠스'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뒤 '정사'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로 흥행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섬세하되 절제된 이미지와 영상미가 눈을 시리게 했다.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에선 상상하기 힘든 실험성으로 관객과 평단을 놀라게 했다. 소재와 장르를 예측하기 어려운 '필모그래피(영화 목록)'를 만들어 온 그다. 꽃잎이 봄비처럼 쏟아지는 날 오후 이 감독을 서울 한남동에서 만났다. 한강이 보일 듯 말 듯한 곳이었는 데 커피숍에 들어서는 모습이 예의 바르고 겸손한 충청인의 전형이었다.



- 최근작이자 화제작이 '죽여주는 여자'다.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로 먹고 사는 '죽여주게 잘 하는' 여자 소영이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을 진짜 '죽여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는 데.

"소외받은 사람들 얘기다. 매일매일 울면서 순간순간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살아간다면 세상 자체가 지옥 아닐까. 상처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보듬기도 하고 그런 거 아닌가. 제 관점으로 그들의 어둡고 괴롭고 추한 면들을 보여줄 건가, 그런 걸 고민했다. 결국 한 사람의 삶을 그리면서 우리 시대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 감독은 '죽여주는 여자'에서 트랜스젠더와 장애인, 다문화 어린이 같은 소수자들의 기구한 사연을 빌려 고달픈 사회상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면서도 단순히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는다. 소영이 "저 사람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라고 읊조리듯 어려움을 보듬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과 온기에 주목한다. 그들이 모여 사는 이태원 낡은 집 마당에 햇빛이 드는 것처럼.

- '스캔들'도 비슷한 맥락이었나?

"그 시대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거다. 사실 시각적으로 잘 만든 사극이 그동안 맘에 든 게 없어서 해보자는 게 있었고 또 하나는 역설적으로 조선시대는 근엄했던 때였고 욕망을 다스리면서 살던 시대였다. 열녀문을 세워주잖나. 뒤집어보면 오죽 열녀가 없으면 그렇게 기렸을까. 신윤복 그림을 봐도 그렇다. 사람 사는 곳에 욕망이 없을 리 없고 아랍에서도 '아라비안나이트'라는 게 있으니까. 인간의 중의적이고 다층적인 면모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조계사 농성 장면에선 영화의 사회성이 크게 확장되는 느낌이다.

"그렇지 않다. 100퍼센트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감독도 있긴 한데 난 유연하게 찍고 있다. 평화로운 날로 설정을 했는데 그 날밖에 찍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15년 가을에 이런 사건이 있었구나, 그런 점에서 굳이 비켜 달라 하거나 다른 날로 바꾸지 않고 찍었다."

- 작품에 대해 때로 친절하게 설명하기도 하는데.

"영화를 영화로만 보길 바라긴 하는데, 또 그러다 보면 의외도 생기니까 굳이 인터뷰를 통해 변명하고 싶을 때도 있다. '저 감독은 정치성향이 저렇다'거나 '의도가 무엇이냐'라고 할 텐데 그냥 거기 있어서 찍었다. 이게 제일 간단한 답이다."

- 국내에서 보다 해외에서 더 역량을 인정 받는다.

"사실 해외에서 한국 영화들은 극단적인 것들이 호평 받는다. 보편이라는 게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인간의 악마성을 드러내서 어떤 식의 자극으로 사회의 이면을 그려보는 것도 있고, 저 같은 경우는 좀 섞여 있다. 마냥 행복한 게 아니라 씁쓸한데 슬픔을 슬픔으로만 그리면 좀 비참하지 않겠나. 세상은 지옥 같으니 너희는 지옥에 산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걸 강조하는 것보다 슬프지만 살아 가야지 어쩌겠는가. 그래서 유머도 마냥 행복한 유머가 아니라 좀 쓸쓸한 유머를 좋아하고 슬프지만 따뜻함이 있고, 슬픔을 슬픔으로 얘기하고 웃김을 웃김으로 얘기하기 보단 웃긴데 슬프고, 슬픈데 어처구니가가 없고, 그런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 영화 아카데미 7기로 영화의 길을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은 했는데 막연히 영화 보고 음악 듣고 여행 가고 이런 걸 좋아하니까 직장에 취직해 일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질이 아니라는 걸 알겠고. 고민하던 중에 미련이 남았다. 영화공부를 해보자고 결심했다."

- 조감독 생활을 하지 않은 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었겠다.

"그건 알 수가 없다. 거기서 얻는 게 있다. 배우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고 스태프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배우는 게 있거든. 첫 영화를 하면서 기준이 없었다. 모시던 감독이 계셨다면 이럴 때 이런 식으로 행동했을 텐데, 이런 게 없어서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다만, 실험적인 작품을 하면 잔소리를 들었겠지."

- 영화감독으로서 일상이라든가 이런 게 궁금하다.

"계속 시나리오 쓰고, 자료 뒤지고, 책 보고 그런다. 그 모든 것들에서 영감을 받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것, 여행, 음악, 맛있는 음식, 친구들과의 모임, 이런 게 다 여가생활인데 빈둥빈둥 집에서 누워만 있는 게 아니라면 다 도움이 된다. 모임에 나가서 독특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발견하기도 하고…."

- 윤여정씨 같은 대배우나 인기 여자배우들과 유독 작품을 많이 하고 있다. 비결이라도 있나?

"음, 두 가지다. 하나는 충무로에 못된 감독으로 소문이 나지 않은 건 사실일 거고 그런 감독은 아니니까.(괴팍하지 않다는 의미로 들린다) 결국은 저 감독의 영화는 믿고 출연해도 되겠다 싶은 신뢰가 있는 거고. 감독의 개성이 있고 영화가 나쁘지는 않으니까 배우들이 믿고 그냥 따라주는 거라고 본다. '여배우들' 같은 경우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몰랐을 텐데 좋은 영화를 만든 감독이니까 뭔가를 시도해 본다고 하니까 믿어주자, 이러지 않았을까. 사실 저로선 큰 부담이다. 실망을 주지 않으려다 보니 너무 스트레스가 심했다."

- 시나리오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인데.

"작가들이랑 주고받으면서 시나리오 기획도 하고 각색도 하고 다 쓴다. 결국 내 거라고 여겨질 정도가 돼야 자신감 있게 찍으니까. 시나리오가 좋으니까 그걸 받아다가 연출만 해준다, 이런 건 내겐 잘 안 맞는다."

- 차기작을 귀띔해줄 수 있나?

"다음 작품이라고 하기는 좀 그런데 음악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냥 일반 대중들이 좋아할 것 같은 건데 결국 투자가 되고 크랭크인이 들어가야 들어가는 거라서 뚜렷이 밝히기가 좀 그렇다. 난 가장 먼저 글이 나오거나 가장 먼저 투자자가 관심 있어 하는 걸 내밀곤 한다. 그래서 다음 작품이라고 확실히 내밀기가 뭐, 그렇게 자연스럽게 되지만은 않는다."

- 영화계 진출을 원하는 충청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용기와 열정만 있으면 영화를 할 수 있는 시대이기는 하다. 부모가 상담을 한다. '우리 애가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난 '말리라'고 한다. 자기 스스로에게 자꾸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나라면 영화를 이렇게 하겠다는 그런 게 끓어오를 때, 스스로에게 계속 냉혹해져야 한다. 이 정도면 되겠다, 이런 게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부끄럽지 않게 하고 있는가 확신이 분명해야 한다."

- 대전에는 자주 가나?

"한두 달에 한 번씩. 집이 거기 있으니까 어른들 뵈러 가고, 명절에 가고, 그 사이사이 한번씩."

- 영화로 성공을 거두는 도시가 꽤 있다. 고향인 대전을 배경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싶지는 않나?

"이상하게 서울 위주의 영화를 주로 찍어서 대전 하고 기회가 없었다. 대전에 스튜디오도 있고 하니까 언젠가 대전의 세트장을 활용해볼까 하는 고민도 하고 있다." 대담=송신용 서울지사장





아버지의 음악·어머니의 문학 예술 유전자 물려받아 꿈 실현

이재용 감독은 누구



다른 또래 친구들이 장난감 자동차를 사 모으거나 만화를 볼 때 초등학생 재용은 영화와 음악에 빠져 지냈다. 아무래도 가정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음악을 좋아하셨고 어머니는 '문학소녀' 같았다. 어머니는 지금도 붓글씨며 가야금 같은 걸 배운다고 한다. 고모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문화예술의 세례를 듬뿍 받은 셈이니 집안의 유전자가 '영화'로 만개한 셈이라고나 할까.

열 살 무렵부터 휴일이면 유성에서 대전 시내 극장으로 가 3-4편씩 영화를 보고 돌아올 정도로 '헐리우드 키드'였다. 충남고교 재학시절에도 다르지 않았다. 대학(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학과) 졸업 뒤 진로를 고민하다가 영화 아카데미 7기로 감독의 길에 뛰어든다. 20대 후반 단편영화 '호모 비디오쿠스'로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받으면서 한국영화의 샛별로 떠올랐다. 1998년 이미숙·이정재 주연의 '정사'로 극영화 감독으로 데뷔했고, '순애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사랑의 기쁨', '다세포 소녀', '귀향', '여배우들',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 등을 선보이며 충무로의 독특한 존재, 문제적 감독으로 자리매김 한다. 특히 '스캔들'은 '정사'와 함께 관객과 비평가 모두에게 호평을 받고, 해외 수출까지 이루어졌다.

덤덤한 톤과 이미지 속에 특이하거나 부조리한 상황과 관계를 정갈하게 담아낸다는 평을 받는다. '죽여주는 여자'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제6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홍콩국제영화제, 리우데자네이루 국제영화제 등 약 30개의 영화제에 초청됐고, 아시아티카 영화제 작품상과 몬트리올 영화제 각본상·여우주연상 등을 휩쓸었다. 이 감독은 또 올해 첫 제정된 시나리오 작가상의 감독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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