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무성영화가 한창이던 시절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로 인기를 끌었던 `찰리 채플린`이라는 배우가 있었다. 작은 더비 모자를 쓰고 콧수염, 헐렁한 바지와 커다란 구두 그리고 쪼이는 재킷에 지팡이를 들고 우스꽝스럽게 걸으며 특유의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주던 배우였다.

한창 특유의 표정 연기와 우스운 행동으로 유명세를 얻던 찰리 채플린은 어느 날 여행을 하다가 시골 마을에서 재미있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찰리 채플린 흉내 내기 대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흥미가 생긴 찰리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그 대회에 참가 한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가 찰리 채플린처럼 분장하고 그의 우스운 표정과 행동을 흉내내기 시작했고 찰리도 평소 자기가 해오던 대로 최선을 다해 연기를 펼친다. 자기가 본인 흉내를 내는 것 만큼 쉬운 일은 없을 테니 결과는 너무도 뻔 해 보였다. 그런데 막상 나온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1등을 할 줄 알았던 찰리는 2등도 아니고 3등에 머물고 말았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질문을 하나 가져보자. 그 대회에서 3등을 한 진짜 찰리가 연기를 잘 못한 탓일까. 아니면 1등을 한 가짜 찰리가 진짜보다 연기를 더 잘 한 탓일까. 굳이 탓을 돌리자면 진짜 찰리와 가짜를 구분 못하는 관객들과 심판진들 탓일 것이라 생각된다. 진짜가 눈 앞에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가짜를 진짜라고 착각하며 가짜에게 상을 주는 심판진들은 마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 지도자들과 닮아있다.

한 달 전 어느 공동체에 가서 새벽미사를 드린 적이 있다. 성전이 허물어 질 때가 올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 때에 대한 표징(表徵)을 묻는 제자들에게 가짜를 조심하라고 당부하시던 복음을 선포 한 후 열띤 강론을 십분 정도 했다. 진짜인척 하는 가짜가 세상에 너무 많으니 그 가짜에 속지 말자고, 그 가짜를 잘 알아보고 피하며 진짜를 잘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깨어있자고 말이다.

그렇게 미사를 마치고 나니 미사에 참석했던 할머니 한 분이 내게 다가오시며 노기를 띤 음성으로 혼내듯이 말씀하셨다. "신부님, TV는 보세요? 신문은 읽으세요?" 부지런히 아침 먹고 출근해야 하는데 할머니는 나를 붙잡고 속사포와 같은 말씀을 쏟아내셨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셨다. "신부님 OO일보 좀 보세요. 채널 O도 좀 보시구요. 나머지는 다 빨갱이들 방송이에요. 신부님도 가짜 아니에요? 진짜인척 하지 마세요" 나는 졸지에 가짜 신부가 돼 버렸지만 고정관념과 세뇌, 착각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같은 예배 안에서 누구는 나라를 말아먹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는 반면, 누구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는 무조건 옳다며 잘되기를 기도하고 있으니 주님은 이 기도를 들으시며 마음이 어떠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할머니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나는 웃으면서 한마디를 건넸다. "할머니, 진리는 하나에요. 그리고 그 진리는 반드시 이길 거에요"라고 말이다. 할머니는 다음 날도 미사에 오셨다. 가짜신부가 드리는 가짜 미사라 오고 싶지 않으셨을 텐데도 왜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강론 때 팔짱을 끼시고 아예 눈을 감고 계셨다.

물 속에 나무 막대기를 담그면 그 막대기는 휘어져 보인다. 또한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내 앞을 지나가기 전에 들리는 소리와 지나간 후의 소리는 다르게 들린다. 하지만 아무도 휘어져 보이는 막대기를 가르키며 기적이 일어났다고 외치지 않고, 다르게 들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소방차가 두 대다, 소방차가 두가지 소리를 낸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눈과 귀가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워 알지 못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알지 못해 착각하는 그들의 무지를 탓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알고 있는 자가 그들의 무지를 깨우쳐 줘야 한다. 지금 당신은 착각하고 있다고, 이 사람이 진짜 찰리 채플린이라고, 저 사람은 가짜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며칠 후면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온다. 자신들의 정치신념을 설파하며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할 그들은 벌써 상대 후보들 흠집 내는 말 잔치를 벌이며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 진정한 권위는 타인이 내게 주는 것이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상대를 깎아 내림으로서 내가 높아질 거라 생각한다면 벌써 착각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그런 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조금이라도 자기 명예나 권위에 누군가가 도전한다고 느낄 때 가차 없이 깎아 내리려 할 것이다. 그 누군가가 자신을 뽑아준 국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착각에서 깨어날 때가 왔다. 무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현명하게 바라보자. 누가 진짜인지 심사숙고 하자. 여기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람을 살릴 만한 대통령이냐 아니면 죽일 만한 대통령이냐 바로 그것이다. 기준은 돈과 경제가 아닌 사람이고 생명이다. 이진욱 천주교 대전교구 이주사회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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