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용흠 소설가
연용흠 소설가
2016년 봄, 바둑 천재와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 프로그램 알파고가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 물론 최고의 정보처리 기술에 인공지능을 갖춘 알파고가 이겨서 화제가 되었다. 지금 세상은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기본으로 한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 인터넷, 무인 운송 수단(무인 항공기, 무인 자동차), 3차원 인쇄, 나노 기술 등으로 삶을 바꾸려 한다.

사람은 물론이고 생명을 가진 것이면 그게 무엇이든 더 잘 살고 싶어 한다. 진화론적 임장에서 보면 끊임없는 삶을 바꾸려는 행위는 종을 진화의 과정으로 올라서게 한다. 그 결과 마침내 나무를 타지 않고 땅에서 직립할 줄 아는 영장류의 한 종을 현생 인류로 올려놓았고, 그 자손들은 지구 아닌 외계로 나아가 번성할 곳을 찾고 있다.

세상이 변화하면 할수록 제 의사대로 그리 사는 게 쉽지 않다. 이젠 우리의 무의식조차 첨단설비와 그 프로그램이 지배한다. 문제는 모두 통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래 사회는 엄격하게 통제된 사회일 것이라는 예측은 수많은 SF영화에 나온다. 게다가 전주(前奏)는 반드시 `아포칼립스`다.

과학자들은 100년 이내에 종의 절반은 멸종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인간은 천 년 만 년 잘 살 것처럼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할 것이다. 인류가 처한 환경 위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 것도 낙관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 대처를 위해 각 국가가 크게 협력하지 않고 있다. 국가의 리더는 선거를 위해 문화 융성과 산업 발전을 외치고 코앞의 것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을 내어준 지구의 신음 소리를 멈추게 할 묘책을 찾아 범국가적으로 움직여도 미력할 판인데 말이다. 게다가 인간의 공격에 적응해버린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슈퍼라는 단어를 쓰고 더욱 공격적으로 반응할 것이니 진퇴양난이다.

문명의 진보 혹은 진화가 과연 최선일까? 번영을 앞세워 효율을 생각하며 바삐 사는 일이 잘사는 일이었던가? 옳다고 믿었던 생각들이 부끄러워진다. 우리는 정말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실천은커녕 심각히 생각하지도 않고 포장된 도로, 콘크리트 숲에서 우리는 지금 웰빙과 웰다잉을 찾는다. 가능하면 먹거리는 친환경으로 하고 싶고, 황사마스크 쓰고 걷기라도 해야 한다. 다가오는 혹독한 이 문명의 겨울을 어떻게 견디게 될지…. 피톤치트가 풍부한 삼림 속 산책이 최상의 꿈이 되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연용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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