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은

열매가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의 소리와 같아

툭 하는 몸짓에 불과하지만

그 순간 바람의 파동을 물살을 만들 수 있나니

물로 영원히 산다는 사실에

수긍하는 기도나 믿음이 있을지라도

우리를 붙들고 있고 그것을 믿어

서로 눈물도 흘리고 손도 잡아보지만

오히려 커다란 망각의 굴레에

바람과 흙의 만남처럼 갈라질지 몰라

폐허와 먼지와 긴 모래사장의

밤과 낮 끝없는 되풀이 속에

한 알의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밤하늘의 뭇별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보일 듯 없어지는

허망한 것이 아니드뇨

마침내 강으로 흘러 바다에 가고

강에서 만난 거센 파도 앞에서 서서히

1962년 `자유문학`에 `나목`으로 등단한 시인. 어느새 55년 동안 시인으로 살아왔다. 반세기 이상을 시인으로 살아보면 시의 언덕에 우뚝 설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시인의 최근 시집 `저녁을 위한 명상`에 수록된 시다. 이 시의 `저녁`은 하루의 저녁만이 아니다. 오히려 시인에게 다가온 생의 저녁을 더 바싹 끌어당긴다. 최시인의 시세계를 요약해 `영원회귀의 시학`이라 일컫거늘. 어느새 이 시에는 시인이 도달한 하늘의 이치로 환히 눈떠 있다. 시인은 짐짓 그 시간과 함께 호흡하며 흐르고 있는지 모른다.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은 열매가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의 소리와 같아 툭 하는 몸짓에 불과하다고. 시인은 생의 종지부를 지구에 뒹구는 한 알의 작은 열매에 비유한다. 또 그는 생을 한 흐름으로 이어가는 물길로 견주었다. 하여 물줄기 모여 강으로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고. 하늘에 올라 이승을 내려다본다 했으니. 시인은 이를 요약해 흐르고 멈추고 솟고 흐트러짐이 우리 가는 길이라 한다. 생은 한 알의 모래 속에 밤하늘의 뭇별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보일 듯 없어지는 것. 그러나 시인은 끝내 물이 되어 영원히 산다는 윤회의 사실에 더 가까이 다가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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