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세계 100대 셰프 1위 피에르 가니에르 인터뷰

가니에르 셰프는
가니에르 셰프는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질서, 철저함,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는 "요리할 때면 줄 타는 곡예사의 심정이랄까. 늘 새로운 재료나 맛,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사진=양우성 제공
피에르 가니에르는 그랑 셰프로 불린다. 설명할 것 없이 위대하다는 얘기다. 음식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인물이라면 들어봤을 이름이다. 2015년 세계 100대 셰프 1위에 올랐다. 그는 자신의 요리가 오직 맛으로만 이해되길 원하지만 `주방의 철학자`, `화덕의 시인`, `요리의 파카소` 같은 최고의 수식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광인이자 예술가`라는 평도 있다. 스스로 규정했듯 `미친 창작`이란 의미다. 가니에르 셰프는 주어진 테마에 따라 요리를 구성한다. 그래서 하나의 접시 위에서 마치 오케스트라 악보처럼 모든 요소가 서로 어우러져 결코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모차르트처럼 너무 많은 악보를 사용한다는 일각의 비평에 대해 `모짜르트가 자신의 과도함을 조절했다면 그의 음악이 존재했을까`라는 말로 일축하며 자신만의 요리 미학을 구현해왔다. 가니에르 셰프는 끊임없이 치솟는 아이디어에 대해 "본능대로 움직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 원천에 대해선 "필요에서 생긴다. 의무감이랄까"라고 설명한다. `내 미각 인생`이란 대목에선 구도자를 떠올리게 한다. 감정이 벅차 오르는 순간, 뭔가 내면의 신호를 직관에 따라 요리 미학으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보면 `맛의 연금술사`가 아닐까. 기존의 질서와는 거리가 먼 파격이다. 국내 정상급 셰프들과 `감사`를 주제로 한 간담회 등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가니에르 셰프를 지난달 27일 만났다.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점`이 위치한 롯데호텔 서울 신관 35층에서였다. 그의 이름을 내걸고 2008년 문을 연 이 프렌치 레스토랑은 지난해 11월 국내 레스토랑 중 처음으로 미쉐린 2스타를 얻은 곳이다. 첫 모습부터 인상적이었다. 휘날리듯 흩어진 머리카락에선 아우리가 묻어났고, 표정과 맡투에선 카리스마가 넘쳐났다.

- 미쉐린 스타를 얻고 싶어하는 한국의 젊은 셰프들에게 조언을 해 주고 싶은 게 있다면.

"글쎄, `자신`이 돼라. 자신의 개성과 문화, 열정… 품질은 같지만 문화는 다르다. 서울은 중동과는 다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라. 그 다음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해라. 얻기 위해 일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일해라. 그리고 항상 꾸준한 의지를 가져라."

- 지난 1월 한국에서 `감정의 법칙`이라는 당신의 책이 나왔다. 아마 아시아에서는 처음인 것 같다. 간단히 소개해 줄 수 있나?

"우선 로키(영화 주인공이 아니라 번역자 이종록의 록에서 따온 별명)에게 감사한다. 3 년간 작업한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부분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경의를 표한다. 지금은 스마트폰도 있고 컴퓨터도 있지만 책의 역할은 참으로 위대하다. 이 책은 내 인생의 이야기이고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방법, 내 과거, 내 허술함까지. 내가 좋은 기술자가 아니라는 점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내 감정을 일에 변환시키는 점을 이해했다. 이 건 마치 사람들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같은 혁신과도 같다. 요리는 단지 먹을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시간의 여유를 즐기는 수단인 동시에 스스로 자신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책은 번역이 쉽지 않은 책이다. 상당히 디테일한 부분이 있고 또 요리부분은 굉장히 복잡하다."

- 가니에르의 요리에는 당신의 많은 생각과 철학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리의 맛 속에도 아름다움과 질서가 있는가?

"분명 요리 속에는 미학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미학만 있는 건 아니다. 팀과의 파트너와의 관계도 있고 삶도 있고 가족도 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한국도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다. 그렇지만 몇 년이 지나니 만족이 생겼다.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아야 한다. 또 그것을 가지고 활용해야 한다. 이게 매우 중요하다."

그는 `감정의 법칙` 맨 앞에 체코 철학자 얀 파토카의 말을 인용해 `인간에 대한 진정한 시험은 자신이 마음 먹은 것을 실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운명이 정해준 역할을 실현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고 썼다. 겨우 열네 살이던 소년 가니에르는 가족과 떨어져, 거친 어른의 세계 속에서 견습생으로 일했다. 야채 바구니를 든 그를 또래 학생들은 놀려 댔다. 하지만 인생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요리사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 현대 미식의 흐름은 무엇이고 또 어느 방향으로 가는가?

"자연이다. 정원에서 직접 채소를 재배하고 직접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작은 농가에서 만든 치즈를 수입하는 식이다. 기본이 없으면 멀리 가기 어렵다."

- 한국 셰프들과의 미식간담회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나?

"개성이 있으면 창의적이 될 수 있다. 자신이 돼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게 중요하다. 자기가 하는 걸 좋아하고 즐기면 성공의 키(Key)가 될 수 있다. 그 다음에 자신의 일에 충실해야 한다. 2주 만에 스포츠맨이 될 수는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목표를 이루려면 그 일에 빠져야 한다. 그러다 보면 발전을 위해 뭐가 필요한지 알게 된다."

- 가니에르 셰프의 미학적 요리 혹은 당신의 시그니처 요리의 특징은 무엇인가?

"재료를 조합하는 능력이다. 한계가 없다.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유럽의 재료를 구하기 매우 힘든 것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한국)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특징 중 다른 하나는 재료를 접시에 담는(플레이팅) 프레젠테이션 스킬 수준이다. 피에르 가니에르의 플레이팅 수준은 프랑스에서의 몇 년 전과 비교해도 상당히 발전했다. 나는 내 노하우를 셰프들과 나눈다. 나는 일을 할 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 2015년 프랑스 잡지인 `르 셰프`가 선정한 세계 100대 셰프 중 1위에 올랐다. 투표는 이미 미쉐린 2, 3스타를 받은 502명의 셰프들만을 대상으로 했다. 비결이 무어라고 보나?

"96년 파산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에 이를 수 있었다. 그 게 중요하다. 분명 그 거다. 많은 사람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분명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위치에 온 거다."

- 그 때 무엇을 배웠나?

"나는 일할 때는 언제나 혼자였다. 누구든, 언론도 접촉 안 하고 집중했다. 이제 인터뷰도 하고 그런다. 경제적인 현실을 고려한다. 요리 미학과 경영의 조화·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단 걸 알게 됐다고나 할까."

가니에르 셰프는 "미슐랭 스타, 명성, 가이드 북 그리고 비평이나 등급 분류 따위는 결국 자본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 결국 자본이었다. 제가 어떤 능력을 가졌든, 개인의 가치가 아무 소용이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술회했다.

-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셰프를 꿈꾼다. 그들에게 가니에르 셰프는 롤 모델이다. 어떤 격려의 메시지를 주고 싶나.

"자신이 되어라. 많이 먹어보고 여행해라. 호기심을 가져라."

가니에르 셰프는 당신이 태어난 해(1950년)에 대전일보도 창간됐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생일이 언제냐"며 환하게 웃었다. "8월 27일"이라고 하자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한국에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인 가족을 위해 어떤 요리를 하겠느냐`는 질문엔 "음, 프랑스라면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엔 칠면조 요리를 하는 데…, 자연의 향기가 담뿍 담긴 나물을 올리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이 문제적 셰프가 우리 곁의 `인간`, 휴머니스트이자 코스모폴리탄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대담=송신용 서울지사장

16세 요리계 입문 … 감정·관계 중시 佛 최고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는누구?

"새해 전날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고 있었어요. 배가 고파졌다는 말에 냉장고에서 아무 재료나 꺼내 두세 가지 음식을 만들어줬죠. 엄청난 칭찬들을 하는 순간 묘한 감정이 가슴 한 구석에서 꿈틀댔어요. 제 요리의 근본 원칙인 `감정의 흔적`이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서 `감정의 법칙` 238쪽)

`전통적인 요리의 근간을 뒤흔들었다`(프랑스 요리평론가 장 프랑스와 아베르),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창의성이 넘친다`(프랑시아 시몽)는 평가를 받는 가니에르 셰프 요리 미학의 출발점이 된 열여섯 살 때 사건이다. 그 이후 자신이 세운 `감정의 법칙`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

미슐랭 1스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제과사 견습 과정에 들어가면서 요리사의 길을 걷는다. 장남이라는 게 죄라면 죄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군 생활도 쉬르크프 함대 개인 요리사로 복무했다. 세계 이 곳 저 곳을 떠돌다가 1981년 프랑스 중소도시인 생-테티엔에서 자신의 이름을 단 첫 번째 레스토랑을 개업한다. 이듬해 미슐랭 1스타, 1993년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 선정됐지만 3년 뒤 파산의 쓴 맛을 본다. "재정적 균열은 심각해져 가는데 나만의 요리에 갇혀 있었다"는 게 가니에르 셰프의 회고다.

6개월 뒤 열렬한 지인들의 도움으로 파리 발자크 거리에 레스토랑을 열어 제2의 르네상스를 일구었다.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따라와 줘 큰 도움이 됐다. 그동안 단 3명의 소믈리에와 작업했을 만큼 인간 관계를 중요시한다. 고객과의 관계에 특히 높은 가치를 둔다. 고객과의 사이에선 우아함, 친절, 감정 등의 조화를 추구한다. 현재 7개국에 걸쳐 12개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다. 저서 `요리`, `설탕과 소금`, 공저 `요리는 기술이고 예술이며 사랑이다`, `요리의 연금술사`, `즉석 요리`, `오리지널 밴드`가 있다.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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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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