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의 신도심인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숱한 우여곡절 끝에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 행정수도의 꿈을 키우다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행정도시가 됐고, 이마저도 수정안 진통을 거쳐 오늘날 행복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올해로 착공 10년째를 맞는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처음에는 행정도시로 명명되다가 요즘엔 친근감 있는 행복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세종시에 속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세종시로 알고 있다.

행복도시는 2030년 인구 50만의 자족도시를 목표로 현재 2단계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20개 중앙행정기관과 20개 소속기관 1만 4699명이 이전했고, 15개 국책연구기관 3550명이 이전을 완료했다.

돌이켜 보면 `행정수도 논쟁` 은 올해로 16년째를 맞는다. 이처럼 오랫동안 정치권과 선거판을 뜨겁게 달군 이슈는 찾아보기 힘들다.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2002년 16대 대선에서부터 2012년 18대 대선까지 행정수도 논쟁을 비켜가지 못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19대 대선도 예외는 아니다.

행정수도의 꿈은 대선 결과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충청지역민들도 선거 결과에 따라 그 꿈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해 왔다. 선거때 마다 행정수도가 단골메뉴로 등장했고 충청권 표심을 흔들었다.

행정수도 논쟁은 2002년 16대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수도권 과밀현상을 해소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단초다. 그 이전 1977년 유신정권때도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백지계획이 있었지만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행정수도 카드가 진가를 발휘한 것은 16대 대선부터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 때 재미를 좀 봤다`고 말했을 정도다.

신행정수도 건설은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좌절된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존재하지도 않는 불문헌법을 들고 나와 위헌판결을 내렸고 충청지역민들의 공분을 샀다.

위헌결정으로 신행정수도는 좌절됐지만 이듬해 3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비로소 오늘날 행복도시의 뼈대를 갖췄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군을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다"며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다. 이 법안 또한 위헌소송이 제기됐지만 2005년 11월 기각됐다.

2007년 17대 대선도 행정수도 논란으로 뜨거웠다. 이명박 후보는 2007년 9월 행복도시건설청을 방문해 "훌륭한 계획인 것 같다. 서울시장 시절에 반대했지만 기왕 시작한 것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충청표를 의식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게 됐고, 선거후 에는 세종시 수정안을 들고 나와 지역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2012년 18대 대선 역시 행정수도는 중요한 의제가 됐다. 세종시 원안을 고수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참여정부의 적자를 자처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모두 `세종시 성공건설`을 약속했다. 박 후보는 행정도시 플러스 알파에 방점을 뒀고, 문 후보는 행정수도급 도시로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이번 19대 대선에서도 유력 후보들이 세종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선 후보들 모두 국회분원과 대통령 집부실 설치, 행정부처 이전 등 세종시 발전을 공약하다 보니 `누가 대통령이 돼도 세종시는 좋아진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처럼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행정수도의 꿈은 조금씩 익어가고 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마자 관심 밖으로 멀어져 간 것도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 수정안으로 지역민을 우롱했고, 박근혜 정부는 세종시 건설에 플러스 알파를 주지 않았다. 더 이상 행정수도의 꿈이 선거철 잠깐 꾸고 사라지는 `봄날의 꿈`이 돼서는 안된다.

오늘날의 행복도시는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염원하는 뜻 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대선 후에도 이들의 꿈을 이어가 세종시를 진정한 행정수도로 키워나가야 한다. 은현탁 세종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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