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4년 롯데그룹 홍보실이 재미있는 설문조사를 했다. 자사에 근무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기혼 직장인 200명을 대상으로 `가계 관리`를 누가 하느냐는 조사가 바로 그것.

조사 결과 `아내가 가계관리를 한다`는 응답은 72%, `양쪽에서 분담해서 한다`는 20%, `남편이 한다`는 8%에 불과했다. 23년이 지난 현재, 당시의 설문조사는 옛말이 됐다.

결혼 3년차 직장인 김모(34)씨는 생활비 전액을 5대 5로 아내와 나눠 지출하고, 남는 비용의 30%는 저축, 그 이외는 각자가 알아서 사용한다. 남는 비용으로는 각 집안의 경조사를 챙기거나 식비·유류비·개인저축 등으로 활용한다. 김 씨 부부는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공과금과 보험료·휴대폰 요금 등 고정적인 지출을 김 씨의 월급으로, 이에 상응하는 비용을 김 씨의 아내가 식료비·육아비 등으로 지출하는 식이다.

김 씨는 "결혼 하기 전 데이트를 할 때도 공동 데이트 통장을 만들어 각각의 비용을 부담했다"며 "저의 경우는 남는 비용을 모두 소진하기보다는 일정 부분을 개인저축을 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다"고 말했다.

부부라고 해서 모든 것을 함께해야만 한다는 것에 반기를 든 것은 비단 가계 관리뿐만이 아니다.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깨져 신혼부부임에도 각각의 침대나 각방을 사용하거나, 퇴근 후나 주말의 일정 시간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부부가 늘고 있다.

실제 여성포털 사이트 이지데이와 네이버 오프스가 전국 성인남녀 46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결혼 1-9년차는 각방을 쓰는 비율이 47%, 10-19년차 63%, 20-29년차 51%, 30년차 이상은 45%로 나타났다.

결혼 2년차 이모(30)씨 부부가 이런 경우다. 이 씨 부부는 각자의 침대를 사용하고 오후 9시에서 10시, 일요일 오후 3시에서 5시까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서로를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각자의 공간과 시간이 오히려 부부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 씨는 "잠버릇이 심해 결혼 전부터 아내에게 침대를 각각 사용하는 것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차츰 이해해 각각 싱글 침대를 한 침실에서 사용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육아로 인해 아예 각방을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아내가 제안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매일 붙어 있는 만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휴식도 취하고, 서로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며 "어른들이 보기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활이 우리 부부에게 큰 만족도를 안겨준다"고 덧붙였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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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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