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배운 백제는 가짜다

부여는 기원전 5세기부터 산둥반도 이북에서 북만주 일대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역을 무대로 활동해왔다. 고구려가 패권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라이벌로 존재했던 부여는 346년 전연(前燕)의 침입으로 사실상 와해됐고, 41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정벌로 이름만 남게 됐다.

결국 494년 문자왕에 의해 패망하고, 이후 공식적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부여라는 국호는 538년 백제 성황이 사비로 천도하면서 국호를 남부여로 칭하면서 다시 부활한다.

`우리가 배운 백제는 가짜다 - 부여사로 읽는 한일고대사`는 이처럼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 부여사를 복원, 부여가 고구려-백제의 원천이었을 뿐 아니라 이들이 일본에 진출해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다는 사실을 얘기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과 함께 `위서(魏書)`, `양서(梁書)`, `주서(周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등 사료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일파가 고구려를 건국했으며, 더불어 백제 역시 부여의 남하로 만들어진 부여계의 나라였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 부여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만주에서 한반도로 남하했으며, 한반도 역시 그에 따라 변화의 과정을 겪었음을 주장한다. 제1차 남하는 고구려 건국 시기쯤 부여의 일부 소수 세력이 남하한 것으로, 이 세력이 한강 유역에 정착해 소국 백제를 건국했다.

제2차 남하에서는 3세기 초중엽 국가적 위기에 봉착한 부여의 주요 세력들이 남하했는데, 이들이 소국 백제를 정벌하고 반도부여(백제)의 기초를 세웠다. 이때 주체 세력이 부여왕 울구태이며, 그는 백제의 고이왕이다.

제3차 남하는 4세기 초, 동호계의 선비가 강성해지면서 부여가 만주에서 큰 핍박을 받자 근초고왕 계열이 한반도로 남하했다. 근초고왕은 왕성한 정복활동으로 4세기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후 고구려의 힘이 한반도에 이르자 반도부여의 일부는 일본 열도로 이동해, 일본 초기 국가 형성에 일조했다.

고구려 계통의 유민이 남하해 건국한 소국 백제가 이후에는 큰 외부세력의 유입 없이 스스로 성장해 대국 백제가 됐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통설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통설에 대해 백제의 역사는 부여사의 흐름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그 근거로 3세기까지 중국의 주요 정사에 `백제`가 언급되지 않고 그 대신 `부여`만 나타남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백제가 처음 언급된 것은 4세기 중반부터이며, 남북조 시대 중 5세기에 존재한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송서(宋書)`에 비로소 하나의 국가로 언급된다. 하지만 그러한 기록도 6세기 남부여가 등장하면서 사라진다.

결국 백제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사용됐다면 그것은 아마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까지로 길어야 1세기 남짓이다. 이러한 사실들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역사적 기록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종의 만들어진 신화임을 강조한다. 박영문 기자

김운회 지음/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588쪽/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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