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하기가 공직 사회에서 으뜸일 청와대 직원들이 말을 잃은 지 오래다. `최순실 게이트`에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 때문이다. 조기 대선을 10여 일 앞두고 직원들의 얼굴에는 표현하기 힘든 낙담이랄까, 자괴감이 담겨 있다. 폐족(廢族)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정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책감 같은 게 엿보인다.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신명을 바쳐 일했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3자 입장에서도 씁쓸하다.

대통령 소속 위원회의 분위기도 처져 있다. 6개 위원회는 `늘공`(늘 공무원·정부 부처 파견)과 민간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정무직)이 주류인 청와대와 다르다지만 심정이 가벼울 리 없을 것이다. 실제로 최순실 국정농단의 주요 무대였던 문화융성위원회 폐지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새해 업무계획에서 `문화융성` 용어 자체를 빼버렸다. 국정 과제 추진을 위한 신데렐라가 하루 아침에 역적이 된 꼴이다.

하지만 대통령 소속 위원회는 죄가 없다. 제한된 인원과 권한으로 나름의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다. 참여정부 때인 2003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로 출범한 지역발전위원회는 부침이 없지 않았지만 이명박정부를 거쳐 박근혜정부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심의·자문위의 성격을 지니되 지역균형발전의 컨트롤타워로서 주민 삶의 질을 개선하는 행복생활권 선도사업 등으로 지역발전의 토대를 닦아왔다. 다만, 역점적으로 추진한 규제프리존특별법 제정이 정치권의 이견으로 무산된 건 아쉽다.

2013년 9월 닻을 올린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1년 뒤 지방자치 종합 발전계획이라는 옥동자를 낳았다. 지방자치 실시 20년 만에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관련 주요과제에 대한 종합적인 개편방안을 담은 정부 최초의 마스터플랜이다. 구체적으로 20개 정책 과제를 제안했는 데 2년이 훌쩍 넘은 현재 구체적 결실을 얻지 못한 건 안타깝다. 한계를 절감한 지방자치위가 지방분권 촉진을 위해 `지방일괄이양법` 제정으로 선회했음에도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중앙부처의 권한 틀어쥐기와 국회의 무관심 탓이지 자치위의 책임이 아니다.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시민사회단체와 지방자치단체, 중앙행정기관과 손잡고 국민대통합 종합계획을 수립·추진해 정책적 기반을 구축했다. 일상 생활 속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제도와 법령을 개선하고, 갈등현장에 전문가를 지원해 성과를 냈다. 상향식 `국민대토론회`는 의제 선정과 실천방안 도출을 국민이 주도하는 형식으로 진행해 호응을 얻었다. 1기 위원이었던 소설가 김주영씨는 활동이 얼마나 고단했던지 "마른 밭에 물 한 바가지 끼얹는 심정"이라고 했는 데 그 속내가 헤아려진다. 청년위원회나 통일준비위원회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불행히도 이들 위원회의 운명을 예단하기 어려운 처지다. 지방자치발전위의 경우 특별법에 따라 2018년 5월까지 운영되지만 앞길은 시계제로다.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통합과 일자리를 외치고 있다지만 대통령 훈령이 근거인 대통합위와 청년위가 존속하리란 보장은 없다. 특히 대표적인 `박근혜표` 자문위인 통일준비위는 살아남을지 지극히 불투명하다. 대선 캠프와 각 부처에서 폐지를 포함 기능 재조정에 나선 상황이다 보니 우려가 더하다.

조기 대선 국면이라고 해서 국가 100년 대계를 졸속으로 다뤄선 안 될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선거 운동이 적폐 청산과 안보 같은 대형 이슈 중심으로 치닫고 있고, 네거티브가 더해지면서 주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방 공약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역발전위와 지방자치발전위 등의 순기능에 주목하고, 주요 정책 과제들에 대해선 수용하는 전향적 자세가 요구된다. 다른 위원회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소속 기구라고 해서 청산의 대상으로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활용의 묘미를 적극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쇼트트랙 대선인데다 정권 인수인계 시기가 턱없이 부족하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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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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