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살아있다] ⑫ 온양민속박물관

온양민속박물관의 외부 모습. 사진=온양민속박물관 제공
온양민속박물관의 외부 모습. 사진=온양민속박물관 제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이수익 시 `우울한 샹송` 中

우체국 대신 박물관을 찾으면 어떨까. 박물관에서는 지금은 잊고 지낸 역사와 자취를 오롯이 만날 수 있다. 무턱대고 아무 박물관이나 가서는 안된다. 추억으로 가는 시간창고로의 여행에 맞춤한 박물관이 충남 아산에 있다. 온양민속박물관이다.

아산시 충무로 123에 위치한 온양민속박물관은 한국문화의 독자성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1978년 구정(龜亭) 김원대 선생이 설립했다. 계몽사의 창업자인 김원대 선생은 남한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전국 학교들의 수학여행 단골 코스였던 현충사에 인접한 곳에 박물관을 세우면 학생들 뿐 아니라 전국민이 편리하게 들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산에 온양민속박물관을 세웠다. 온양민속박물관은 종합사립민속박물관으로 전시, 교육, 워크숍 등 한국인의 전통생활문화사를 한 눈에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전체 대지 6만 4800㎡에 전시관은 6090㎡ 규모로 세 개의 상설전시실과 한 개의 특별전시실, 야외전시장으로 구성됐다.

제1전시실은 `한국인의 삶`이 주제이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에서 옛 조상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아이의 출산과 질병을 보호해주었던 삼신할머니 일생의 가장 영광스러운 잔치로 여겼던 회혼례, 고려시대부터 지켜왔던 관혼상제, 우리 삶 속에 담겨 있는 의·식·주 생활문화를 통해 선조들의 지혜를 살펴볼 수 있다.

제2전시실 주제는 `한국인의 일터`이다. 산으로 강으로, 밭으로 바다로, 밤으로 낮으로, 두루두루 힘을 모아 일을 돌보았던 손길들과 자연의 순리에 거스르지 않은 순환체계 속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한 조상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제3전시실은 `한국문화와 제도`를 중심으로 꾸며졌다.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자연주의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문화예술과 신앙의례를 재구성했다. 무구한 세월동안 갈고 닦아진 솜씨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예술이 됐고 축적되어 온 의와 예는 생활의 구석구석에 자리잡아 올곧은 삶을 살도록 해 주었다.

박물관의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 가운데 가장 비중 있는 것은 소장유물이다. 온양민속박물관은 소장 유물에 대한 재정리를 통해 2010년 충청남도에서 6건의 문화재지정을 받았다. 갑주와 갑주함, 사당형감실, 거북흉배 3건은 충청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됐다. 천수원명금고, 금고, 용문촛대 3건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한번에 모든 전시물들을 둘러보기가 벅차다면 이들 문화재 중심으로 동선을 짜는 것도 효과적인 관람 팁.

갑주는 옛 무사들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기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호신용과 조선시대 군례때 의례를 장엄하기 위해 입었던 의식용으로 나뉜다. 조선시대 갑옷의 재료는 목면이나 비단, 모직을 비롯해 종이, 가죽 등 다양했다. 온양민속박물관 소장의 갑옷은 모직물로 제작한 전갑이자 표면에 도금제 두정을 박은 두정갑이다. 온양민속박물관 갑주는 무엇보다도 실제로 착용했다고 여겨지는 갑옷과 투구 뿐 아니라 그것을 넣어 보관했던 갑주함까지 온전하게 보존됐다는 데에서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전시된 갑옷은 겉감은 붉은 색 홍전이고 안감은 파란색 운문단이다. 그 위에 못을 박고 깃과 소매 및 앞뒤 트임에는 담비털로 선을 대었다. 여밈으로 목 부분에 호박단추 3개를 달고 허리에는 푸른색 운문단을 달아 여미게 되어 있다. 어깨 위에는 여의주를 바라보는 사조룡 견룡을, 목 둘레에는 다섯잎 오동잎 장식판을 달았다. 앞판에는 여의주와 사조룡을, 뒷판에는 일월과 함께 여의주와 호랑이를 배치했다.

온양민속박물관 투구는 현존하는 투구 중 거의 완형을 갖추고 있는 유일한 투구이다. 온양민속박물관 투구는 당대 최고 솜씨를 보여주는 조형성과 완벽한 공예 기술이 유감없이 발휘된 조선시대 금속공예의 정수이다. 갑옷이나 투구를 넣기 위한 흑칠 갑주함에 간주를 넣을 흑칠 장식함까지 온전하게 갖춘 것은 온양민속박물관의 것이 유일무이하다.

온양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28호 감실은 전체 너비 183㎝, 앞뒤 깊이 81㎝, 높이 96㎝로 현존하는 감실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정면 네 칸, 측면 한 칸으로 일반 가옥의 구조를 하고 있다. 기단은 세 개의 각목을 중앙 기둥 아래와 양측면에 앞뒤로 길게 댔으며, 창방인 기둥머리에 결구되어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 가구체를 형성했다. 평방은 기둥머리에 결구된 창방 위에 놓여 공포를 직접 받게 되어 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감실은 단청이 칠해져 있지 않은 데 비해, 온양민속박물관 감실의 단청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곧 기둥부터 창방, 평방, 서까래 및 부연에는 주로 연화머리초가 그려져 있다. 또 상인방과 옆면 벽체에는 모란국화문이 구륵진채로 빠짐 없이 그려져 있다. 때문에 단청을 칠한 화원은 매우 우수한 그림솜씨가 지니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감실은 당대 최고 솜씨를 지닌 대목장이나 소목장 및 단청장의 솜씨가 한데 어우러진 뛰어난 작품이다. 감실은 사대부가의 사당 안에 설치해 조상의 신주를 모셔두는 일종의 장이다.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거북흉배는 충남도 민속자료 제30호이다. 이 흉배는 짙은 아청색 운문단 위에 한 마리의 거북을 금은실로 촘촘하게 수 놓은 것으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된 예가 없는 독특한 것으로 주목된다. 중앙에 위치한 거북은 12.5X16.5㎝로 화면을 압도한다. 네 발을 왼쪽으로 향하여 걸어가던 거북이 머리를 뒤쪽으로 돌려 입에서 붉은 화염을 내뿜는 생기 있는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19세기 말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찍은 흑백사진을 보면 거북흉배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온양민속박물관 거북흉배의 주인이 흥선대원군이라고 여겨지는 이유이다.

온양민속박물관 윤지은 학예사는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거북흉배가 고정시대 1880년이나 1890년 대원군의 환갑이나 고희를 기념하기 위해 상의사에서 제작해 내 보낸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윤평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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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민속박물관 내부 모습. 사진=온양민속박물관 제공
온양민속박물관 내부 모습. 사진=온양민속박물관 제공
온양민속박물관 소장유물인 거북흉배. 사진=온양민속박물관 제공
온양민속박물관 소장유물인 거북흉배. 사진=온양민속박물관 제공
온양민속박물관 소장유물인 갑주. 사진=온양민속박물관 제공
온양민속박물관 소장유물인 갑주. 사진=온양민속박물관 제공
온양민속박물관 소장유물인 감실. 사진=온양민속박물관 제공
온양민속박물관 소장유물인 감실. 사진=온양민속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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