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기념관은 최근 KBS 드라마 <추리의 여왕>의 촬영장소이자 영화 <도둑들>, <수상한 그녀>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30주년 기념관은 최근 KBS 드라마 <추리의 여왕>의 촬영장소이자 영화 <도둑들>, <수상한 그녀>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영화 속 건축, 일상의 행복이 되다

글 홍윤기 대전대 건축학과 교수

국내외 많은 유명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도시와 건축은 다양한 역할을 해 왔다. 단순히 이야기 구성의 배경인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극의 흐름을 이끄는 역할을 하거나 등장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데 일조하는 등 건축적 요소는 점점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공상과학 영화처럼 허구적 상황을 묘사하는 경우는 특히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역할로서 건축적 장치가 적극적으로 채용된다. 예를 들어 1982년에 상영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는 당시에 만연했던 미래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표현하기 위해 어둡고 침울한 기계화된 도시를 영화 내내 보여줬다. 미국의 유명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마야 유적에서 영감을 받아 1923년에 완성한 애니스 브라운 주택이 주인공의 거주공간으로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밝혀지지 않은 고대 문명의 수수께끼가 미래와 연결된다는 작가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영화적 이야기가 가상의 세계가 아닌 실제적 세계에서 벌어지게 될 때, 등장하는 배경은 관람객들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 영화 `유브갓메일`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은 거대도시 뉴욕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우연의 만남을 이어가며 사랑을 이뤄낸다. 한국영화 `접속`을 떠올리게 하는 극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능했던 것은 익명의 관계들로 가득한 도시 속 인물들을 마치 작은 시골 마을의 이웃처럼 친숙한 관계로 설정한 구조가 결정적이었다. 또 `cafe Lalo`라는 실재하는 뉴욕의 명소를 직접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해 현실적 감각을 더한 덕분이다. 비슷한 예로 영화 `세렌디피티`와 동명인 장소가 등장인물의 연결고리로 등장하는 `serendipity`라는 카페가 있다. 영화 외적으로 볼 때,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를 영화 배경으로 사용하면 관객들은 기억하는 장면 속으로 몰입하기 위해 해당 장소들을 방문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인다.

국내 영화에서도 이러한 예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아마도 건축과 가장 직접적인 영화는 `건축학개론`일 것이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이용주 감독은 영화의 배경인 1990년대 대학생의 모습과 건축가로 성장한 주인공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실제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촬영을 했고, 그 설계사무소의 건축가가 제주도의 서연의 집을 설계한 구승회 대표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로 유명해진 서연의 집은 제주도 방문객에게 인기 있는 관광지로 자리매김 했다. 주인공이 누워서 잠드는 옥상 마당에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서 영화 속에 없던 난간까지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은 인기도에 따라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또 실제 방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대전시의 대전대학교 캠퍼스는 좋은 사례다. 영화 `도둑들`, `수상한 그녀`, 드라마 `추리의 여왕` 등 대전대 캠퍼스가 다양한 이야기 속의 배경으로 등장해 재학생과 방문객의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외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는 민현식, 승효상 선생 등 유명 건축가들이 대학 캠퍼스를 건축 작품으로 탄생시킨 덕분이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건축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축물 자체의 형태적 가치 보다는 위치해 있는 지형과 문화적 배경을 얼마나 조화롭게 관계 맺는 지를 더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오랫동안 우리들에게 익숙한 대학 캠퍼스의 모습은 드넓은 캠퍼스의 입구 정문에서 뻗어나간 곧고 넓은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군인들처럼 가지런하게 정렬된 건물들이다. 이런 건물들은 때로는 근대 선교사들이 들여 온 서구 건축양식을 띠기도 하고, 그리스 신전 같은 고전주의적 양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소위 `context`라는 지역적인 맥락이나 풍토성을 반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용운동, 새울, 비룡동, 대청호로 이어지는 산과 골짜기의 흐름 속에 캠퍼스를 조성한 대전대학교는 연속되는 높낮이 변화와 경사지 등의 자연적 조건을 한국 건축계의 거장들의 손을 빌려 명품으로 만들어 냈다. 거장들은 산을 깎고, 평지를 다듬고, 골짜기를 뚫어 길을 내는 인간의 지배적 본성을 최대한 낮췄다. 대신 경사지 방향을 따라서 자유롭게 건물을 앉히고, 높낮이가 만드는 결을 따라 돌아가는 길을 만들어 소박함을 내보였다. 자연과 대립하지 않고, 순응하는 모습은 자연의 흐름과 무관하게 가로 세로 직교 체계의 경직된 도시에서 살고 있는 대전시민들에게 색다른 행복을 선사한다. 이런 행복은 방문객이 아니더라도 상영관을 통해, 그리고 브라운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대칭으로 마주 보는 평면적 구성이 아니라 비스듬히 엇갈린 대상들의 배치는 카메라에 담기는 공간의 입체적 깊이감을 부여한다. 높고 낮은 건물들과 번갈아 율동을 선보이는 동산과 골짜기의 유연한 실루엣은 적절한 긴장과 여백의 리듬으로 등장인물과 함께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최근 우리의 일상은 거의 매일 사람들 사이의 대립과 충돌, 갈등과 분열이 주는 반복적 피로로 가득하다.

만족하지 못하는 현실과 이상적 세상 사이를 오가며 잊어버린 개인의 감성을 찾아 영화관을 방문하고,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숲 속에 자리한 아름다운 대학 캠퍼스에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며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양보하는 삶의 지혜를 얻기를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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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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