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작은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구청에서 도심 자투리땅을 활용하여 조성한 나눔 텃밭을 분양받은 것인데, 예닐곱 두둑 정도 만들 수 있는 자그마한 텃밭이다. 모두들 바쁜 일상에 새싹을 키워내기는커녕 풀밭을 만들 거라며 말렸다. 그러나 첫 시작은 순조롭다. 서둘러 땅을 파고 두둑을 만들어 각각 자리를 잡아 모종과 씨앗을 심어주었다.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 대지의 신 가이아(Gaia) 같은 엄마를 보고 자랐으니 어떻게든 새싹을 틔우겠지 홀로 낙관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부지런한 생산자요, 창조자이다. 작은 화분도 엄마에게 가면 상추를 키워내고, 가지를 주렁주렁 매달게 된다. 심지어 비실비실하던 나무도 엄마의 손길 몇 번이면 반짝거린다. 게다가 엄마는 작은 땅 한 뼘도 허투루 두는 법이 없다. 지난여름 엄마가 소일삼아 일구어 놓은 고구마 밭에 나갔더니 고구마와 생강, 콩, 파, 상추가 풀 한포기 없이 질서정연하게 자라고 있었다. 나는 그날 엄마가 위대한 대지의 신 가이아처럼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엄마뿐만 아니라 내 기억 속의 할머니와 증조할머니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이 땅의 어머니들은 모두 부지런한 창조자가 아닐까?

반면에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한가로운 베짱이다. 늘 부산하게 바빴던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무엇이든 이야기만 하면 뚝딱 만들어주는 나만의 `창작소`이기도 했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가 맥가이버나 에디슨쯤 되는 줄 알았다. 아버지와 나는 베짱이 콤비로 틈만 나면 뒹굴 거리며 온갖 일을 벌였고, `사고뭉치 부녀`라는 별칭도 얻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와 내가 사고치지 않으면 집안이 조용하다고 식구들은 입을 모은다. 바꾸어 말하면 아버지와 내가 추진하지 않으면 새로운 일이 별로 없고, 재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대전 원도심에서 활동하며 엄마처럼 부지런하고 지극한 창조자와 아버지처럼 느긋하고 기발하며 유쾌한 사고뭉치들을 많이 만났다. 노래하는 진채, 청년 미은오리, 왜요 아저씨와 연극기획자 이인복 대표, 박석신 화가 등등. 그들은 때로 좌충우돌 사고뭉치처럼 엉뚱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들의 부지런함과 지극한 열정으로 인해 원도심이 달라지고, 대전이 괜찮은 도시가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창조성`으로 인해 문화의 거리 원도심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도심 텃밭의 수많은 문화자원 중 `사람`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박은숙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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