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의 시대`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사회가 갈등·대립에 매몰됐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끊이지 않는다. 대안이 빠져있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결과야 어떻든 눈 앞의 싸움에 이겨야 한다는 심리만 판을 친다. 반대가 판치는 시대, 책임은 다른 시대 얘기다. 무분별한 반대로 인한 결과 역시 남의 일이다. 피해가 뻔하지만 속칭 반대론자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내 가족, 내 이웃이 피해를 보더라도 `내 말만 먹히면 된다`는 태도다.

주지하다시피 `반대를 위한 반대`는 많은 문제를 낳는다. 비근한 예는 정치판에서 찾을 수 있다. 진보-보수, 여-야로 나뉘어 `무한다툼`, `무한반대`를 이어가고 있다. 국민 또는 국가의 득실은 뒷전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추진된 행정수도 건설만 봐도 그렇다. 행정수도 반대 세력은 노 전 대통령 임기 후까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행정수도는 도시로 격하됐다. `관습법`이라는 웃지못할 명분까지 동원해 벌인 작태다. 이로 인해 `용의 머리`로 시작했던 행정수도는 `뱀의 꼬리`에 그칠 위기에 처했다. 만약 당시 반대가 없었다면 오늘의 행정수도는 달랐을 것이다. 국가를 한단계 업 그레이드 할 거대담론의 `핵`이 됐을 수 있었단 얘기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만든 폐단은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비근한 예로 대전 도심 속 대표적 시민 쉼터인 월평공원 일반시민 이용 금지 움직임을 들 수 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민간공원 조성 특례제도에 대한 반대가 이어지며, 결국 시민들이 공원을 이용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까지 갔다. 대부분 개인 소유의 땅으로 조성된 월평공원에 추진되는 사업에 대한 발목잡기에 화가 난 지주들이 사유재산권 행사라는 `카드`를 뽑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민간공원 개발사업 대상지인 월평공원에 땅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들은 최근 협의회를 구성하고, 공원 중 사유지에 대한 시민들의 출입 및 불법 텃밭 사용을 금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민간공원 개발사업에 대한 반대를 위한 반대가, 결국 시민에게 공원을 뺐는 결과까지 만든 셈이다.

월평공원 지주들이 사유재산권 행사의 이유로 내세운 대목은 눈 여겨 볼 만하다. 월평공원지주협의회는 일부 시민단체들이 월평공원을 마치 자기 소유인양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점을 적시했다. 사유재산이 보장된 나라에서 개인 소유물에 대해 `감놔라, 대추놔라`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같은 사례는 월평공원 외 민간공원 개발사업 대상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곱지않게 보는 시각이 확산되면 될수록, 시민들이 쉼터인 공원을 활용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쪽으로 유추된다.

월평공원 사례에서 곱씹어 봐야 할 또 다른 대목은 시민단체의 활동범위다. 시민단체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담보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집단으로 규정된다. 정부와 관련 없는 기구라는 뜻에서 NGO(Non-Government Organization), 시민 사회단체라는 뜻에서 CSO(Civil Society Organization)라고도 불린다. 이는 시민단체의 활동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담보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 보 듯 시민단체의 움직임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담보하느냐는 문제에는 의문부호가 찍힌다. 사회갈등을 낳았고, 그에 따른 비용도 야기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대전의 시민단체는 대전시로부터 적잖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는 시민단체 스스로 사회적 책임에 더욱 무게를 둬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무릇 모든 선택에서 반대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선택은 찬반의 갈림길에서 시작한다. 갈림길은 서로 대척되는 상황에서 생기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반드시 짚어야 부분이 있다. 반대의 결과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지에 대한 문제다. 선택의 순간, 이어질 결과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온전히 선택자의 몫이다. 찬반에 따른 파장은 선택자 또는 선택을 유도한 선동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다. 민간공원 개발 등 쟁점이 된 문제는 더할 나위가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시민단체는 반대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결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 자세도 보여줘야 한다. 그 것만이 합리적 시민사회, 책임 있는 시민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성희제 취재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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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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