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들은 혹시나 싶어 장난 삼아 그런 시도를 해봤는데 다음날 그곳에 가보니 멧돼지 한 마리가 석유 깡통 안에 대가리를 처박고 있었다. 영리하다고 해도 멧돼지는 역시 멧돼지였다.

그후에도 빈 석유 깡통에 스스로 대가리를 처박고 발광을 하는 멧돼지들이 더러 있었다.

멧돼지란 놈은 그런 괴상한 짓을 하는 놈들이었는데 이장춘 포수는 또 엉뚱한 짓을 하는 멧돼지를 봤다.

1973년 가을 이 포수는 경북 청동에 있는 어느 산에 멧돼지 사냥을 하러 갔다가 그 산기슭에서 집돼지들을 사육하는 농민들을 만났는데 그 농민들은 이 포수에게 이상한 부탁을 했다.

그 농민은 자기가 사육하고 있는 집돼지들의 사료가 부족하여 집돼지들을 산기슭에 있는 풀밭에 방사를 했다면서 멧돼지를 잡으려다가 그 집돼지들을 잡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멧돼지와 집돼지는 잘 보면 모습이 달랐으나 먼 곳에서 보면 오인될 수도 있었다.

이 포수는 웃으면서 그 농민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안심시켰으나 그렇다고 집돼지들이 안전하지는 않았다.

방사된 집돼지들 중에서 많은 놈들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집돼지들이 상처를 입는 이유는 뻔했다. 방사를 하고 있던 집돼지들은 숲속에서 멧돼지들과 만났다. 본디 집돼지와 멧돼지는 같은 조상 밑에서 태어난 동족이었으므로 그들이 서로 만나 어울리게 된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멧돼지란 놈들은 욕심이 많았고 성질이 사나웠다. 특히 멧돼지 수컷들이 집돼지 암컷들을 탐냈다. 그래서 멧돼지의 수컷들은 경쟁자가 되는 집돼지 수컷들을 해쳤다. 그리고 자기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암컷들에게도 난폭하게 굴었다. 그래서 수컷 멧돼지에게 순순히 따르지 않는 집돼지 암컷들도 상처를 입는 것 같았다.

이 포수는 그래서 집돼지들에게 상처를 입힌 것으로 보여지는 사나운 멧돼지 두 마리를 총으로 잡아 간접적으로 집돼지들을 보호했다.

이 포수가 동족들에게 난폭하게 군 멧돼지들을 징계하고 난 뒤부터 집돼지들이 상처를 입는 경우가 없어졌다.

이 포수는 그래서 그 일을 잊어 버리고 있다가 다음해 봄에 그 마을에 가봤다. 이 포수는 그 마을의 집돼지 우리에도 가봤는데 그때 우리 안을 본 이 포수는 크게 놀랐다. 우리 안에 멧돼지 새끼들이 열 서너 마리쯤 있었는데 그중에 온몸에 수박무늬가 있는 놈들이 대여섯마리 섞여있었다.

몸에 수박무늬가 있는 새끼들은 집돼지의 새끼들이 아니라 멧돼지의 새끼들이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