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살아있다] ⑪ 아산정린박물관

아산정린박물관 조정숙 관장이 전시된 기와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윤평호 기자
아산정린박물관 조정숙 관장이 전시된 기와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윤평호 기자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도심. 옛날 우리네 마을 모습은 달랐다. 정겨운 초가지붕과 기와집이 어울렸다. 요즘은 시골이나 고궁, 민속촌에나 기와집을 볼 수 있다. 현대화와 함께 급격하게 사라진 기와들.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기와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있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 휴대리길 142에 위치한 `아산정린박물관`(관장 서정호, 조정숙)이다. 아산정린박물관은 와전(瓦塼_)을 주제로 한 명품 박물관을 지향한다. 공주대 문화재보존과학과 서정호 교수가 20대 후반부터 30여 년간 수집한 1만 5000여 점의 기와들을 전시하고 있다. 단일 기와 전시 규모로 전국 최대이다. 박물관의 이름 정린(鼎麟)은 서정호 교수의 호이다.

충남 제31호 1종 전문박물관인 정린박물관은 부지 3460㎡에 지상 2층, 연면적 566㎡ 규모로 지어졌다. 와전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실, 체험교육실, 야외전시실 등을 갖췄다. 정린박물관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와 동아시아의 다양하고 우수한 암막새, 수막새, 장식기와, 전돌을 전시하고 있다. 백제, 가야, 신라,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생활문화와 예술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쓰임새의 토기류, 신라시대 건축부재로 사용한 다양한 석조유물, 고려시대 탑, 다양한 석인상들, 전통적 생활양식 문화를 볼 수 있는 조상전래의 유형적 근대 민속유물도 전시됐다.

기와는 한반도 뿐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건축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된 고대 건축의 백미이다. 정린박물관은 와전류 전시를 통해 미적감상대상 뿐만 아니라 각 국가별, 시대별 와당의 문양과 제작형식을 비교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면 자연스레 국가간 문화발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각 시대별 토기류와 석조유물 전시를 통해 그 시대 생활도구의 다양한 양식과 표현방법, 제작방법 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화예술과 사회상, 사상과 종교, 철학 등을 이해하는 장소로도 활용된다.

박물관 관람은 `숨은 그림 찾기`이다. 전시 유물이 간직한 의미와 다른 유물들과의 차이점을 찾아가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주의할 점은 과유불급이라는 것. 한번에 모든 전시물을 보겠다고 욕심 부리면 관람이 지루해져 포기하기 십상이다. 욕심을 덜어내고 전시장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정린박물관에서도 `숨은 그림`을 풍부하게 만날 수 있다.

계단을 따라 2층 전시장에 오르면 백제 고분군에서 출토된 전돌을 재현한 전시물이 관람객을 반긴다. 실제 전돌 보다 크기를 키워 복제해 전통 전돌의 세세한 면까지 살펴볼 수 있다. 백제 공예품의 진수로 국보 제287호인 금동대향로의 봉황을 전돌에서도 만날 수 있다.

서정호 관장의 아내인 조정숙 관장은 "고구려 기와는 붉은색에 문양도 호전적이다. 백제 기와는 선도 가늘고 섬세해 여성스런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백제 사비 시기의 기와는 기술적인 면에서 웅진 시기의 기와와 맥을 같이한다. 사비 시기 수막새를 장식하는 연꽃무늬는 풍부한 양감과 부드러운 곡선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입체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꽃잎 끝 부분을 들어 올리거나 반전시키는 수법을 사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7세기 백제 수막새는 꽃잎 내부에 장식문양이 가미되거나 연판의 곡선이 중앙부에서부터 완만하게 반전되는 형식이 새로 나타나면서 주로 익산지역에서 크게 유행했다. 백제기와의 시기별 문양은 우리 민족 전통미의 근간이 되며 우리나라 문양 양식의 특질을 이룬다.

정린박물관에 전시된 백제 기와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문양은 연화문이다. 연화문은 수막새에 많이 나타나는 꽃 문양이다. 연꽃은 오래전부터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불교의 교리와 연관되면서부터는 불교미술품에 널리 사용됐다. 백제 기와의 전성기인 사비 시대 연화문 수막새 기와는 연판의 형태와 꽃잎 끝부분의 변화에 따라 옹기형, 침형, 능선형, 삼각반전형, 장식형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특히 파문 수막새는 긴 줄과 같은 선각으로 이뤄져 꽃무늬보다는 선무늬에 가까운 도안으로 백제만의 독특한 생동감과 율동미를 보여준다.

정린박물관 2층 전시장에는 백제 기와와 나란히 신라 기와도 전시됐다. 신라에 기와가 언제부터 사용됐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에 나오는 비와나 옥와 등의 기록을 통해 3, 4세기경부터 당시의 궁궐 건축에 수키와와 암키와가 제작돼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에서 연화문 수막새가 본격적으로 제작돼 사용된 것은 528년(법흥왕 15)으로 불교가 공인되고 흥륜사·황룡사 등의 사찰이 건설되기 시작한 6세기부터이다. 고신라시대에는 얼굴무늬와 귀면무늬가 새겨진 수막새가 약간씩 제작됐으나 연꽃무늬가 장식된 것이 대부분이며 전체적으로 연꽃의 사실성에 충실한 모습이다.

정린박물관에서 기와를 통한 시간여행은 조선시대까지 다다른다. 조선시대 기와는 형태와 문양에서 미적 감각이 약화된 반면 기능성이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고려시대까지는 기와에서 직각으로 꺾이던 암막새와 수막새의 이음 방향도 조선시대에 이르러 둔각을 이루며 시간이 지나면서 각도가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형태는 암막새가 마치 반월형 같이 된 것과 중앙이 뾰족해지고 좌우에 몇 단의 굴곡이 있어 역삼각형의 형태로 변형돼 비흘림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수막새 기와도 대체로 동그란 원 모양이 주로 많이 만들어졌지만 밑이 처진 역타원형 모양도 있다.

정린박물관 전시물 가운데는 외국과 교역 흔적을 짐작할 수 있는 기와도 있다. 담양 창평마을의 조선시대 인면문망와 기와는 사람 얼굴을 닮았다. 기와의 사람 얼굴은 우리나라 사람 얼굴이 아니다. 코가 높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남성적이다. 조정숙 관장은 "서역인의 얼굴을 기와에 모방했다"며 "조선시대 들어 사람의 자존감이 높아지며 기와 문양에 사람얼굴을 표현한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정린박물관 전시 기와는 국내에 한정되지 않았다.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수·당시대 등 해외 기와도 전시됐다. 2층 전시장 한켠에는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의 항아리가 놓여졌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항아리 앞에는 항아리 뚜껑이 전시됐다. 뚜껑 안쪽에 게 문양이 새겨졌다. 조 관장은 "조상들은 게의 단단한 껍질을 보고 마치 갑옷과 같다고 여겼다. 오늘날로 치면 `갑`으로 행운의 의미를 담아 항아리에 게 문양을 그렸다"고 소개했다. 윤평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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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정린박물관은 와전을 주제로 한 명품 박물관을 지향한다. 사진=아산정린박물관 제공
아산정린박물관은 와전을 주제로 한 명품 박물관을 지향한다. 사진=아산정린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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