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진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눈으로 살펴보는 시진, 귀로 들어보는 청진, 두드려보는 타진,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는 촉진 이 네 가지 방법은 우리의 감각을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진단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 은사님 중 한 분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촉진을 중요시했다. 임상실습을 지도하는 동안 우리에게 환자를 손으로 많이 만져볼 것을 주문하시곤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는 것도, 경험도 전혀 없었으므로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후 전공의 시절을 지내면서도 첨단 진단기기가 가져다 주는 정확함에 매료돼 환자와 직접 살갗을 부딪치는 일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전문의가 되고 점점 경험이 쌓이면서 필자도 접촉의 중요성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은사님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리게 된다. 물론 환자와의 접촉은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단순히 돈을 매개로 의료 서비스를 주고받는 관계로부터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 다시 말해서 아픈 사람과 그를 걱정하는 사람의 관계로 발전시키는 첫 단계가 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손은 몸의 어느 부위보다도 촉각 신경이 밀집돼 있다. 우리 몸에는 약 500만 개의 촉각 기관이 있는데 그 가운데 3분의 1이 손바닥과 손가락에 몰려있다. 그 다음으로 민감한 부분은 입술과 혀라고 한다. 우리가 상대편의 손을 잡을 때 손에 있는 많은 감각세포로부터 뇌로 전달되는 정보는 눈이나 귀를 통해서 전달되는 정보보다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체감을 높여주는 효과가 생긴다. 예로부터 모르는 사람끼리 만났을 때 악수를 통해 서로의 친밀감을 높이는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연애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손잡았던 순간의 짜릿함이나 갓난아기와 볼을 비빌 때의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분이 상당히 많으리라 여겨진다.

"당신을 사랑해", "너보다 더 소중한 친구는 없어". 이런 말들은 허공을 맴돌다 사라질 뿐이지만 살갗을 부딪는 행위는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의 마음 깊은 곳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친구, 직장 동료, 가족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접촉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중요해서 서로 손을 잡거나, 등을 두들기거나 가벼운 포옹을 할 때 우리는 말로 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의 성장 발육에도 접촉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미국의 한 의과대학이 실시한 비교조사에서도 접촉이 부족한 아이들은 음식물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병치레가 많으며 정서적으로도 불안한 상태를 보인 반면, 친부모나 의료진이 자주 안아주거나 마사지 해주는 등 타인과 접촉이 많았던 아이들은 좋은 성장 발육을 했다고 보고된다. 이와 같이 신체 접촉은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연결해줄 뿐 아니라 사람을 성장 발육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환자들에게 인기 있는 의사가 되는 비결은 환자와 많이 접촉하는 것이다. 환자가 힘들어할 때 옆에 그냥 서있기보다는 손을 잡고 위로해주고, 환자가 좋아졌을 때도 등을 두드려주며 축하해줄 수 있다면 환자는 정말 그 의사를 믿고 신뢰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바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보자.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났을 때는 악수와 함께 가벼운 포옹도 해보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설 때면 끌어안고 등을 토닥거리면서 격려의 말을 해보자. 친구는 오래오래 당신을 기억할 것이고 당신이 사랑하는 아이들은 하루를 평안함과 기쁨 속에서 보낼 것이며 혹시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엄마, 아빠의 격려 손길을 기억하며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도 동료나 부하 직원이 맡은 일을 훌륭히 완수해냈을 때 "잘했어"라는 말 한마디로 그치지 말고 힘찬 악수를 하거나 등을 두드려주면서 칭찬해보자. 따스한 동료애가 피어 오르면서 직장 분위기는 한결 밝아질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내미는 손길이 이웃의 손과 접촉하게 되고 이것이 계속 물결처럼 전파돼 나갈 때 우리가 몸담는 공동체가, 나아가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고 사랑이 가득해지리라 믿는다. 이일우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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