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냥꾼들은 그런 위험한 짐승과 싸우지 않으면 되지만 농민들은 멧돼지와 싸워야 할 숙명을 지니고 있다. 싸우지 않으면 멧돼지가 논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한국의 멧돼지들은 그들이 서식하는 산림에 먹이가 부족하면 풍부한 먹이가 있는 논밭으로 내려온다.

때도 시도 없이 논밭에 내려온 멧돼지는 갈고리 같은 송곳니가 붙어 있는 기다란 주둥이를 땅에 박아 놓고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면 논밭은 온통 뒤집어진다. 그러면 대식가인 멧돼지들은 농민들이 가꾸어 놓은 수확물을 모두 먹어치운다.

그래서 농민들은 멧돼지들과 전쟁을 하게 된다. 논밭 여기저기에 감시소나 땅굴을 파놓고 멧돼지들과 싸운다. 농민들은 불을 피워 놓고 고함을 지르면서 내려온 멧돼지들을 쫓아내려고 하지만 그런 위협에 도망갈 멧돼지들이 아니다. 그래서 농민들이 창이나 괭이 몽둥이들을 휘두르면서 공격을 하는데 그런 무기로는 멧돼지와의 싸움에서 승산은 거의 없다.

지금도 멧돼지들이 많이 사는 한국의 지역에서는 논밭 주위에 돌담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데가 많다. 멧돼지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농민들이 쌓아 올려 놓은 돌담의 흔적들이다.

농민들은 특히 일제 말엽에 멧돼지의 천적들인 범 표범 늑대들이 일본의 관리들에 의해 살해되거나 멀리 추방된 시기에 논밭 주위에 그런 돌담을 많이 쌓아 올려 멧돼지의 피해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허술한 돌담은 대부분의 경우 멧돼지의 저돌을 막지 못했다. 멧돼지들은 그까짓 돌담쯤은 힘들이지 않고 무너뜨렸다.

한국의 농민들이 믿는 사람은 사냥꾼들뿐이었으며 사냥꾼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멧돼지 사냥을 했다.

사냥꾼들이 주로 하는 사냥법은 미끼사냥이었다. 멧돼지들이 자주 출몰하는 산기슭 논밭 주변에서 멧돼지들이 잘 나타나는 새벽에 잠복하고 있다가 총으로 잡는 방법이었는데 그건 효과가 있었다. 멧돼지 사냥의 명수인 경북 청도의 지주 사냥꾼인 이장춘 포수는 그 방법으로 한꺼번에 열 마리의 멧돼지를 잡은 기록이 있다. 모두 서른 마리쯤 되는 멧돼지들이 고구마 밭에 들어오려다가 대량사살이 된 것이었다. 이 포수는 멧돼지들은 그렇게 많이 사살되었는데도 계속 밭으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한국에 얼마나 많은 멧돼지들이 살면서 어떤 짓을 하는지를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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