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리오즈(Hector Berlioz·1803-1869)의 `환상교향곡`을 들으며 걷다가 신호등에 멈춰 섰다. 문득 종소리가 들려왔다. 주변 성당에서 들리는 소리인가 싶어 두리번거렸는데, 실상은 이어폰을 타고 들려온 음악소리였다. 종이 울리면서 5악장 마녀들의 윤무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마주친 신호등 앞 은행나무의 연초록 잎이 일제히 춤추는 듯했다.

환상교향곡은 `어느 예술가의 생애`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작품이다. 1827년 파리음악원에서 작곡가의 꿈을 다져가던 25세의 베를리오즈가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은 한 여인을 만나면서 이 곡이 탄생하게 된다. 영국 셰익스피어 극단의 해리엣 스미드슨을 본 그는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랑의 열병에 빠져버리지만, 인기 절정의 여배우에게 무명의 작곡가 지망생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이때 경험한 비통함과 절망을 베를리오즈는 음악 속에 녹여냈고, 이렇게 완성된 환상교향곡은 그의 대표작이자 19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손꼽히게 된다. 그리고 이 곡으로 인해 베를리오즈는 오매불망 그리던 스미드슨과 결혼에 골인하였다.

환상교향곡은 사실적 스토리의 흥미로움도 주목되지만, 벼랑에 선 예술가가 예술적 성공과 경제적 성공을 동시에 이뤄낸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예술가는 경제적 가치가 중요시되는 재화시장과 미학적, 문화적 가치가 중요시되는 사상시장에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상업적 작품이냐, 예술적 작품이냐의 잣대 앞에 놓이게 된다는 말이다. 예술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 대중의 공감을 획득하여 경제적 성공을 이루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예술적, 문화적 가치가 사회적 혁신을 이루기는 더욱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환상교향곡을 듣는 내내 대전 원도심 문화공간 파킹의 박석신 화가가 떠올랐다. 예술가의 골방에서 나와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이 어쩌면 베를리오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아픈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촌철살인 몇 마디 화두로 적어내곤 하는 그의 그림에서 나뭇잎을 춤추게 하는 종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어느 날엔 병원 복도에서 환자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있는가 하면, 어느 날엔 시민들과 원도심 담벼락에 파랑새를 달고 있고, 또 다른 날엔 토스트콘서트 장에서 음악에 맞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박석신 화가, 그가 가진 문화적 가치는 얼마일지 발칙한 생각을 하며 환상교향곡을 반복 재생한다. 박은숙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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