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여러 상황에서 듣게 되는데, 대체로 원인과 결과가 서로 맞물려 어느 한 쪽에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난처한 상황일 때 자주 쓰이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질문은 상황을 묘사하는 은유적 표현이기 이전에 생명의 미스터리에 관한 과학적 의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2010년 영국 과학자들이 이 해묵은 논쟁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국 CBS는 `Chicken Came Before the Egg: `Scientific Proof``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닭이 먼저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영국 셰필드(Sheffield) 대학과 워윅(Warwick) 대학의 공통연구팀의 주장을 전했다. 그들은 계란 껍데기 형성 원리를 규명한 연구에서 계란 형성과정에서 OC-17로 알려진 오보클레디딘(ovocledidin)이라는 단백질 성분이 계란 껍데기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OC-17이 닭의 난소에서 발견된 성분과 동일하다는 것도 밝혀냈다. 즉 닭의 난소에서 발견된 OC-17이 있어야 계란이 만들어질 수 있으므로, 닭이 먼저라는 말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말을 쓰면 안 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닭이 먼저라는 영국 과학자들의 주장은 가설이지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기사를 보면서 필자는 "그럼 그 난소를 가진 생물체는 어디에서 온 건가"하는 의문이 생겼고, 아직 그 답을 찾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여전히 "진행 중인 과학"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

과학은 세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인간의 사고 활동이며, 그로부터 얻어진 체계적이며 이론적인 지식이라 말할 수 있다. 과학은 세상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특정 현상이나 사물의 성질 등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우고 이론적 또는 실증적 입증을 통해 가설을 다듬어 가는 과정을 거쳐 지식을 얻게 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일상에 깊이 침투해 있는 질문이지만 근본적으로 과학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역으로 과학에서 다루는 의문 역시 과학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특히 과학적 사고와 지식을 찾아내는 일련의 과정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각자 갖추어야 할 소양이라고 본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답을 찾고 그 답에 대해서도 회의(懷疑)와 성찰을 거듭하는 것은 성숙한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4월은 과학의 달이다. 그리고 4월 21일은 과학의 날이다. 과학의 날이 처음 법정기념일로 정해진 것은 1968년이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국민적으로 인식시키고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노력을 다짐한다는 목적으로, 정부가 과학기술처 발족일(1967년 4월 21일)을 기념해 정했다. 거의 50년 전에 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과학기술에서 찾고자 했던 정부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 보다 훨씬 앞선 1934년 4월 19일에 민족주의적인 과학기술인들이 `과학데이`를 정해 대중적인 과학운동을 전개한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과학기술의 대중화는 하루가 달리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현재에 더욱 유효한 외침이다. 과학적 사고는 의문과 상상력 그리고 성찰을 주재료로 이루어진다. 특정 과학기술적 주제를 탐구하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방법론이다. 이런 점에서 과학기술의 대중화는 과학기술로 얻어진 성과물의 대중화가 아니라, 과학적 사고의 대중화가 보다 본질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뇌가 일상화된 것에 대해서는 메모리 할당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시간을 보내도 저장된 메모리만큼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는 달라진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것은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상에서 자주 접해서 무심코 지나갔던 일조차 새로운 관점에서 의문을 가지고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우리의 사고 에너지와 시간의 체감 속도는 나이와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려도 무리는 없을 거 같다.

4월은 봄의 푸름과 꽃들의 향연이 우리의 감각을 들뜨게 만든다. 그리고 4월은 과학의 달이다. 생동하는 감각으로 세상의 원리에 의문을 던지고 상상력을 키움으로써 사고하는 에너지를 충전시키기에 딱 좋은 시절이다. 김인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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