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정신은 철저히 공익(公益)이었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사익(私益)을 취하지 아니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했다. 자신의 죽음이 장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릴지 모르니 알리지 말라 한 것이다. 국토수호라는 공익에 자신의 죽음조차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결연함이다. 성공후사(先公後私)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이순신을 소환한다. 국론분열과 금융위기, 경제, 정치, 안보가 위태로울 때마다 이순신 정신과 리더십을 갈구했다. 오는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472주년)이다. 특정 인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유일하다. 지난 주말 현충사는 생기가 넘쳤다. 수많은 시민들이 현충사의 봄을 만끽했다. 나무 한그루 마다 빼어난 자태와 봄 꽃의 향연. 초목의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청아하고 눈부시다. 혼탁하고 어지러운 이 나라. 국론분열과 나라 안팎의 혼미로 지친 힘든 마음을 둘 곳이 어디던가. 시민들은 현충사에서 거친 마음을 내려놓는다. 마음 치유, 안식이다. 인파는 쉼 없이 찾아든다. 유품과 기록의 흔적에서, 절체절명의 나라를 구한 충무공을 흠모한다.

충무공 정신은 `영정`에 깃 들어있다. 현충사는 영정을 모셔 놓고 추모하는 곳이다. 충무공 영정에 참배하며 애민정신과 리더십의 기운을 받드는 것이다. 헌데, 지금 현충사에 모셔진 영정이 가짜라니 기가 막힐 일이다. "아빠, 100원짜리 동전에 있는 그 분이 맞아". 아니었다. 최근 2년 넘도록 현충사에서 참배를 했던 국민들을 모두 속아왔다. 가짜 영정에 참배 한 것이다. 지금 현충사 사당에 걸린 영정은 실제 영정이 아닌 복사본인 것으로 본지 취재결과 확인됐다. 진상은 2년 전 국립중앙박물관 측이 초상화 전시회를 열었는데, 현충사 영정을 반출하면서 대신 복사본을 제작해 대체해놓고 여태 그대로 놔둔 것이라고 한다. 전시회가 끝나 영정이 돌아 왔다면 곧바로 사당에 옮겨와 봉안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돌아온 영정 원본은 수장고에 넣어두고 아직까지 방치하고 있었으니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가뜩이나 박-최 게이트와 대선정국에 시민들은 거짓, 허위, 가짜에 염증이 나 있는 판이다. 그 누구도 몰랐단다. 이순신 장군 후손들 조차도 몰랐다. 깜깜이 관리 수준이다. 투명치 못한 우리나라의 요지경 문화재 관리 수준이다. 수많은 국민들은 가짜 영정에 참배했다. 명백한 국민 기만이고 우롱이다. 복사본 영정에 참배한 정치인도 수 없이 많다. 최근만 해도 인명진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현충사를 방문했고, 황교안 국무총리,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난해 현충사를 참배했다. 모두가 칼라프린터 복사본 영정에 참배했다.

대체 이 무슨 변고던가. 유물 전시 후에는 휴식기를 갖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건 해외 전시 등 특별한 경우다. 영정 상태도 양호하다. 굳이 휴식기를 가질 필요도 없었음에도 보관 차원에서 휴식이라니 수긍하기 어렵다. 햇빛이 들어와 색이 바래고, 방습과 방온이 문제일 수 있다는 둘러대기는 변명 감도 안된다. 관리에 문제가 있다면 첨단 보존 방식을 도입하면 그만이다. 만일에 영정이 훼손됐다면 다시 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1953년에 그린 영정으로, 전혀 훼손되지 않은 양호한 상태다. 유물이라면 훼손 방지를 위해 복제품을 만드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영정은 유물이 아니다. 영정은 모셔 놓고 이순신 장군을 참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봉안된 것이다. 오직 현충사에 봉안해야 위엄이 선다. 1952년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린 영정은 이듬해 봉안식을 거행하며 의식행사를 치렀다. 1973년에는 표준영정으로 지정돼 화폐와 교과서 등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물론 장우성 화백에 대한 친일 논란으로 영정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건 가짜영정 논란과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순신 장군의 또 한번의 수난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후손의 잘못으로 충무공의 수난이 얼마나 많았던가. 1931년엔 이충무공 종가집의 빚으로 장군의 고택과 묘소 임야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 1968년엔 난중일기 도난 사건이 있었다. 2009년에도 고택 터와 묘소 임야가 법원 경매에 처하고 충무공 종가의 유물이 암시장에 등장하는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수난이 끝나지 않고 있다. 이순신 장군 추모가 가식으로 가득차 있다.

이찬선 천안아산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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