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사회는 경제적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인구의 고령화와 만성질환으로 인한 국민 의료비 증가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대한 우려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그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현행 건강보험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합리적인 의료전달체계 구축에 대한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으나 선진국들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강조되어 온 보건의료체계에서의 일차의료 역할 강화가 우리나라서는 그 중요성이 간과되어 온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전달 체계는 의료법 제 3조에 의거, 의료기관을 크게 의원급과 병원급(종합병원 포함)으로 나누고, 병원급에 상급종합병원을 따로 구분하고 있다.

의원급은 주로 외래환자를, 병원급은 주로 입원환자를,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을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기관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일차의료체계가 정립되어 있지 못해 일차의료로 대표되는 동네의원이 병원과 경쟁하고, 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이 경쟁하고 심지어는 동네의원과 대학병원 같은 대형병원이 외래환자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의료전달체계는 의료기관간 의료시설의 대형화와 고급화 경쟁 심화, 의료자원 공급과잉과 과당경쟁으로 인한 비효율적인 진료현상 심화 그리고 의료자원 편중으로 인한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과 같은 문제점을 야기 시켰다.

의료는 필요를 기준으로 볼 때 감기나 배탈 같은 가벼운 질환이 암과 같은 중증 질환보다 훨씬 빈번하게 발생한다. 감기나 배탈은 자주 일어나는 반면 치료의 부담이 가벼워 큰 병원에 갈 필요 없이 동네의원에서 간단하게 외래 진료를 통해 치료하면 된다. 그런데 수술이 필요한 충수염이나 폐렴 등으로 입원을 해야 할 경우에는 동네의원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종합병원에 가야하며 암과 같은 난이도가 높은 중증질환은 대학병원과 같은 대형 종합병원에서 제공하는 고난이도의 복잡한 의료서비스를 받아야한다. 이런 중증 질환은 국가 전체적으로 필요의 크기는 작지만 매우 복잡하고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료전달체계는 의료기관의 기능을 구분하고 단계적 진료체계를 확립하여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 기대치를 충족하면서도 아까운 의료자원이 낭비되지 않고 국민 의료비를 절감하도록 정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한 단편·일률적인 정부정책은 보다 나은 의료 서비스를 추구하는 국민들에게 대형 병원 이용 규제의 효과적인 정책 수단으로 작동하지 못했으며 그동안 대부분의 국민들은 양질의 일차의료 서비스에 대한 경험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제 경증질환자들이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 대신에 일차의료기관인 동네의원을 이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동네의원의 매력과 신뢰가 높아져야 한다. 단골의사제도는 의사환자간의 신뢰관계를 높이도록 도와줄 것이다. 평소에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친숙한 단골의사를 제도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중증질환자를 대형병원으로 의뢰하고, 치료를 마친 환자를 대형병원으로부터 다시 역 의뢰받는 체계가 구축될 수 있다. 이렇게 단골의사제도를 통해 의원과 대형병원간의 역할분담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만성질환에 있어서만큼은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서비스 제공이 중요한데, 단골동네의원들이 대형병원보다 우수하다는 근거와 지표를 산출하고 대국민 인지도를 높이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일차의료기관이 지금까지의 사후적, 단편적 서비스 제공에서 사전적, 포괄적 성격의 지속적·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과 보상기전을 마련해야 한다.

어떤 제도이든 도입 후 안정되기까지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며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의료제도의 개선에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고령사회를 지나 초고령 사회를 대비해야 한다. 일차의료 강화를 통한 의료체계 확립에 적절히 대비하지 않는다면 증가하는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렵고 노인들의 고통도 늘어날 것이다.

빠른 정책적 결단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미선 충남대학교병원 약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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