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수가 이번 대선에서처럼 한심한 지경에 처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한국정치의 보수는 이승만과 김구가 열었다. 이승만을 받쳐준 정치세력은 김성수, 송진우 등 지주들이 주축이 된 한민당이었다. 이승만의 자유당이 4·19학생혁명으로 망했을 때도 그 뒤를 이은 것은 보수정당 민주당이었다.

1948년 정부수립과 6·25전란을 겪으면서 좌익세력은 설 땅이 없었다. 4·19혁명 직후 지하에서 나와 잠시 햇볕을 쬐다가 5·16 쿠데타로 싹쓸이를 당했다. 북쪽의 김일성 극좌 공산세력이 무려 3대에 걸쳐 남한점령정책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동안 보수우파는 반공(反共)을 무기로 정치적으로 태평성대를 즐겼다. 반공은 오랫동안 보수우파가 정적을 잡는 도깨비 방망이였다.

지난 70년간의 한국정치사에서 보수는 60년간을 지배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시대 10년을 빼고는 전부 보수출신 대통령이 당선됐다. 남북대치로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나라에서 보수가 왜 이처럼 처참하게 추락했는가를 참회하지 않는 한, 그 좋던 날이 쉽게 돌아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은 70년 보수역사에서 최악의 선거다.

탄핵이 이어 구치소 신세가 된 박근혜 전대통령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억울하다거나 배신당했다고만 생각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그가 임명한 검찰이 명예를 걸고 수사한 결과 그렇게 된 것이다. 그의 수석비서관, 장차관, 수많은 관련자들이 증언했고 방대한 기록과 물증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5년 전 보수유권자의 적극적 지지로 당선된 그가 진심으로 참회하고 사과한다면 보수의 회복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아직도 탄핵반대와 구속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이번 대선에서 진보후보를 이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보수의 공(功)은 크다. 2차대전 후 많은 나라가 독립정부를 갖게 됐지만 한국은 가장 경제적으로 성공했고 정치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공은 장기집권 욕심과 독재, 부패로 상쇄되어 왔고 박근혜정권에 이르러 치명타를 맞게 된 것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이번 대선에서 보듯이 가망이 없다. 역대 대선을 보면 고정 보수층이 40%정도라고 하는데 지금 보수후보들의 지지율 총합은 고작 10%정도다. 30%는 어디론가 달아났다. 극우파들이 시청광장이나 의왕 구치소 앞에서 태극기 들고 아무리 악을 써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질려서 달아난 보수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전무하다. 오히려 극우의 행태에 질려서 더 달아날 뿐이다. 보수의 이탈과 유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내년 지자체선거와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도 우려된다. 이런 상태로 가면 지방선거에서도 대패하고 다음 총선에서도 국회의원수가 30~50명 수준으로 쫄아들지 모른다.

어쨌든 이번 대선을 계기로 권력의 칼은 보수를 떠나게 되었다. 대다수의 보수들이 박근혜 정부의 행태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 쪽으로 옮겨갔다. 보수정당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지지율은 15% 이하로 나타나고 있다. 이 수치는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더 줄어들 공산일 크다. 투표자들은 자기표가 사표(死票)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보수성향의 투표자들은 더 좋은 후보든, 덜 나쁜 후보든 간에 다른 정당의 후보를 선택하려고 할 것이다.

보수의 실종이라고 까지 일컬어지는 보수몰락을 좌파와 종북 탓으로 돌리면 안된다. 언론, 국회, 검찰 때문도 아니다. 국민들이 그렇게 만들고 법이 그렇게 만들었다. 남 탓할 때가 아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5년 전과도 다르다. 더 민주시민화되고 선진화되었다. 이걸 모르고 정치하면 큰 코 다칠 것이다.

<순천향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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