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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부주의 맹시

2017-04-05 기사
편집 2017-04-05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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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명의 여학생이 있다. 이중 세 명은 하얀색 상의를 입고 있고, 나머지 세 명은 검은색 상의를 입고 있다. 이 여학생들은 같은 색 상의를 입고 있는 학생들과 농구공을 주고받는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흰색 상의를 입고 있는 여학생들이 서로 몇 번의 패스를 주고받는지 정확히 세는 것이다. 검은색 상의를 입은 학생들의 패스와 헷갈리면 안 된다. 쉽지는 않지만, 하얀색 팀에만 주의를 집중한다면, 크게 어렵지도 않은 과제다.

흥미로운 것은 여학생들이 패스를 주고받는 도중에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고릴라는 여학생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서 통과한다. 중간에 한 번 멈춰 서서 진짜 고릴라처럼 자신의 가슴을 몇 번 두드리기까지 한다.

과연 정상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고릴라 차림을 한 이 사람을 못 볼 수 있을까? 더구나 한눈팔지 않고 농구공을 패스하는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큰 몸으로 어슬렁거리면서 여학생들 사이를 지나가는 이 고릴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의 다니엘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챠브리스가 했던 이 연구에서 약 50%의 사람들이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면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눈을 뜨고도 그렇게 큰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이러한 현상을 부주의 맹시라고 한다. 주의를 충분히 두지 않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이 먼 것처럼 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혹시, 고릴라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패스에 집중하지 않고 도중에 딴짓을 한 것은 아닐까? 확인 결과, 고릴라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몇 번의 패스가 이루어졌는지를 거의 정확하게 기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릴라를 보지 못한 사람도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신의 주의를 집중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였을까?

이 연구의 핵심은 패스의 횟수를 세도록 한 것이다. 참여자들은 두 팀 중 한 팀의 패스만 정확히 세기 위해서 모든 주의를 기울여서 공의 움직임을 쫓았던 것이다. 그 결과, 주의를 두지 않았던 대상인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이다.

부주의 맹시가 발생하는 이유는 인간의 주의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처리 용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일부의 정보에만 주의를 준다. 따라서 선택한 정보는 처리할 수 있지만, 선택되지 않은 정보는 처리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대상(농구공 패스)에 주의를 집중하면, 다른 대상(고릴라)에는 주의를 둘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눈은 뜨고 있지만, 주의를 두지 않은 대상은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부주의 맹시는 말 그대로 우리가 눈 뜬 장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상생활 중에도 부주의 맹시 현상은 쉽게 일어난다. 운전 중에 전화통화를 하는 경우다. 통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과제다. 상대방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기억 속에 저장된 정보를 찾아내야 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위해서 순간순간 판단과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통화는 농구공의 패스 횟수를 세는 것보다 더 많은 주의를 요구하는 과제인 것이다. 따라서 통화를 하는 동안 우리의 주의는 운전이 아닌 통화에 전적으로 집중된다. 그 결과, 부주의 맹시에 빠지게 된다. 눈을 뜨고 앞을 보며 운전을 하고 있지만, 통화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는, 눈앞에 고릴라가 지나가도 고릴라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키지는 것이다.

실제로 운전 중 핸드폰 사용은 사고유발 위험을 약 4배정도 증가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핸즈프리 기구를 사용하더라도 통화는 운전자의 반응속도를 늦춘다는 것이다. 핸드폰을 손으로 쥐고 있든 아니든 간에 통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운전자의 주의를 갉아먹기 때문이다. '통화운전'은 '음주운전'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다. 전우영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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