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미술관 '동아시아 회화의 현대화:기호와 오브제'

이응노, 구성, 1968, 127x33
이응노, 구성, 1968, 127x33
이응노 화백(1904-1989)처럼 종이를 그림을 그리는 도구로만 보지 않고 종이 자체가 지닌 물성에 주목해 다양한 작업을 벌여, 각기 독특한 정체성을 구축해 온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대전에서 전시된다.

대전 이응노미술관은 오는 11일부터 6월 18일까지 `동아시아 회화의 현대화:기호와 오브제`라는 타이틀의 전시회를 연다. 이응노 외에 한국의 양광자·오윤석, 중국의 량췐, 대만의 양스즈, 일본의 마쓰오 에이타 등 초청을 받은 아시아 4개국 작가들의 작품이 선보인다.

량췐, 양스즈, 마쓰오 에이타로, 양광자, 오윤석 등 5명의 작가들은 모두 `종이`라는 오브제(object)를 공통으로 사용해 서로 다른 외적 혹은 내재적 기호의 세계를 보여주는 게 특징. 이응노가 프랑스 파리 화단에서 선보였던 `구성`과 `콜라주`와 같은 작품들도 전통기법을 탈피한 오브제의 발견이었다. 문자를 쓰지 않고 종이를 조형화함으로써 작가적 탐구, 정신, 정체성을 전달하는 `기호`로 추상적 탈바꿈을 하는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

1전시실에서는 량췐, 양스즈, 마쓰오 에이타로 세 명의 작품을 비교해 전시한다. 량췐은 조형의 원소로 작용하는 색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먹 대신 차(茶)를 사용한다. 이를 통해 화면의 비정형의 색면을 추구하면서 일상적 삶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양스즈의 작품들은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한 평면 회화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면 종이조각을 연결해 붙인 콜라주이다. 즉 단순한 화면 바탕이 아닌 구조적 조각과 가튼 입체성을 보여준다. 출판물의 인쇄용지 등을 작품의 오브제로 사용하는 마쓰오 에이타로는 종이의 가장자리를 태워 기호를 물성으로 변환한다. 이로써 종이가 물질과 정신의 메신저가 되면서 작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자문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2전시실에는 양광자와 오윤석의 작품이 전시된다. 취리히 예술종합대학에서 동양인 최초로 교수로 재직하며 동서양 조형언어를 탐구해 온 양광자는 한글을 화면에 기호화하고 명도 높은 포스터물감과 먹을 종이가 가진 물성에 부합하는 표현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런 작업을 통해 양광자는 쓰는 행위가 무의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 자신으로 회귀하는 점을 보여준다. 제1회 고암미술상 수상자로 이응노의 실험 정신정을 계승하는 젊은 작가인 오윤석은 작품에서 오브제인 종이는 칼로 오려내는 행위를 통해 개별적 조형이 한 화면에서 이미지로 전환되는 독특한 기법을 선보인다.

3전시실에서는 이번 전시회의 근간이 된 이응노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응노의 콜라주 작품 들은 대체로 한지와 같은 종이를 구겨서 찢고 뭉쳐서 채색하여 선조미를 나타낸 것. 이러한 독특한 기법은 유럽 앵포르멜의 마티에르와 같은 재질의 물성 요소를 종이로 실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전시실에는 전시를 보다 재미있게 이해하기 위한 체험 공간과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도록과 인터뷰 등 여러 가지 자료가 전시된다.

한국미술연구소 수석연구원이자 대만 국립타이난 예술대학 객원교수인 문정희 교수를 협력 큐레이터로 초빙한 이번 전시회는 서구에 대한 반향과 모색을 경험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오늘에 이른 동아시아의 근현대 회화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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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스즈, 우뚝 솟은 산석, 마에 먹、파카 잉크, 한지 콜라주, 150x200cm, 2016
양스즈, 우뚝 솟은 산석, 마에 먹、파카 잉크, 한지 콜라주, 150x200cm, 2016
량췐, 차의 바다, 2008-1, 종이에 먹, 찻물, 콜라주, 128×44.5cm
량췐, 차의 바다, 2008-1, 종이에 먹, 찻물, 콜라주, 128×44.5cm

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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