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작은 책방이 하나 있다. 지하 깊숙이 자리 잡은 책방에는 일반도서보다 학생용 문제집이 대부분이고, 책값은 십 원의 에누리 없이 표지에 적혀 있는 가격을 다 지불해야만 한다. 그것도 찾는 책을 골라 들 수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흔하디 흔한 베스트셀러 진열대도 없이 그저 아이들 책, 어른들 책, 참고서에 따라 책장에 꽂아 놓았고, 잡지는 진열대에 눕혀져 있다. 한 가지 더 투덜대자면 따뜻한 음악마저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 책방을 자주 찾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인터넷에서 검색한 책을 실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는데, 그건 별반 의미가 없었다. 그곳에서 새로 나온 책을 찾는다는 것은 오래된 책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별수 없이 책방을 찾을 때마다 주인에게 제목만 쭉 나열하다가 오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다음에 가면 그 책이 턱 하니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번 반복되고 나니 이제는 약속처럼 주인에게 제목을 슬쩍 흘리고 온 후, 책 내용을 궁금해 하면서도 책방주인이 서가에 그 책을 꽂을 때까지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 마음씨 좋은 책방 여주인을 만나는 날엔 몇 백 원의 잔돈을 깎게 되었으며, 책방을 드나드는 동네사람들과도 제법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때로는 주인이 내주는 고구마를 먹으며 수다 꽃을 피우기도 한다. 인터넷서점에서 만날 수 없는 동네사람 간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작지만 친근한 우리 동네 바깥서재이다.

대전 원도심에도 대전시민의 바깥서재를 자처하는 책방이 있다. 바로 지역서점 계룡문고다.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이 아니라 `책 읽는` 서점이다. 그곳에서는 `왜요 아저씨`와 `마법사 언니`가 모든 날을 책 읽는 읽요일로 만드는 마술을 부리고 있다, 린제이 캠프의 `왜요?`라는 동화책을 읽어주다 보니 아이들에게 왜요 아저씨로 불리게 된 이동선 대표, 마법사 모자와 망토를 두르고 빛 그림책을 읽어주며 마법 같은 책 세상으로 이끌고 있는 현민원 이사, 10년 넘게 원도심에서 책의 빛을 밝히고 있는 사람들이다.

언제부터인가 동네책방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전국적인 대형서점들도 인터넷서점에 밀려 근근이 유지되고 있다 하니 동네책방의 사라짐은 자연스런 시대현상일지도 모른다. 겨우내 미루어두었던 일을 제대로 시작하는 청명(淸明)에 혼잣말처럼 건네 본다. 낡은 외투를 그냥 입고 새 책을 사라! 동네책방에서라면 더할 나위 없다. 박은숙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