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대전엑스포93이 열리기 직전인 같은 해 6월 한밭대로가 뚫린데 이어 2000년 12월 22일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가 개통됐다. 호남고속도로가 지나는 서대전에서 대전 중구 안영동-대전 동구 판암동-경부고속도로 비룡 분기점을 연결하는 길이 20.8㎞의 유료 도시고속도로가 뚫린 것이다. 이로써 대전은 도시를 둘러싸며 순환하는 고속도로망을 비로소 갖게 됐다. 당시 대구·광주보다 먼저 순환고속도로망을 갖춘 것이기도 하다. 이후 5년 뒤인 2005년 대전진주고속도로가 이에 연결되면서 대전은 전국 각지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는 사통팔달 고속도로망을 갖추게 된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낮시간 밤시간은 그렇다 쳐도 출퇴근 시간의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도로로 쏟아져 나온 자동차 수는 갈수록 눈에 띄게 늘고 그만큼 출퇴근 시간은 길어진다. 길어진 시간만큼 일찍 나오면 될 일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매사가 어디 그런가. 다른 사람과 몸을 부대끼는 일 없이 편하고 빠르게 출퇴근하기 위해 자동차를 샀는데 대전 시내에서의 출퇴근은 점점 답답함과 짜증이 커진다.

일단 대전 시내를 달리는 차량 수가 크게 늘었다. 대전시 차량 등록대수는 2005년 7월 말 50만 대를 돌파한 뒤 11년 반 뒤인 지난해 말 64만8000대로 불어났다. 11년간 14만 대 넘게 증가한 것이다. 대개 한 집당 한 대꼴이었던 게, 지금은 두 대인 건 흔하고 미혼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가구당 세 대, 네 대를 보유한 집도 있다. 1인가구여도 대부분 차 한 대는 갖고 있다.

때문에 2005년 대전 도심에서의 평균 차량속도는 시속 25㎞ 안팎이었던 것이 지금은 20㎞ 밑으로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2030년 대전 계룡로의 평균 주행속도는 시속 13.3㎞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시속 약 20㎞쯤인 것도 평균 주행속도이지 출퇴근 시간만 따로 빼면 더 낮아진다. 도심 평균 주행속도로 따지면 서울(25.2㎞), 광주(29.9㎞), 울산(42.8㎞) 등지보다 훨씬 못하다.

반면 도로율은 대전 30.8%, 서울 22.4%, 광주 24.9%, 대구 23.5%, 울산 17.6%, 부산 21.7% 등으로 대도시 중 대전이 여전히 높다. 어째서 아이러니 같은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우선 대전 시내 교통분담률에서 승용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다. 50%를 넘어 60%에 육박한다. 교통분담률에서 승용차가 30%정도 차지하는 서울과는 대조적이다. 대전에서 승용차의 비중이 이처럼 높은 데는 넓은 도로율로 인해 빠르게 소통되던 90년대의 기억이 전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어 도로율은 높지만 입체교차로를 갖춘 대로, 순환도로가 부족한 점도 크게 작용한다. 대전 원도심에서는 지하차도 또는 교차로 위로 차량이 통과하는 입체교차로를 갖춘 순환도로가 거의 없다. 대전 시내 순환도로는 남부순환고속도로를 포함해 다섯 개나 되지만, 남부순환고속도로를 제외한 네 개의 순환도로는 대부분 입체교차로가 부족하고 신호등이 가로막는 평면교차로로 이어진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전 시민들 대부분은 대전시 행정구역 안에 순환도로가 넷이나 된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나마 아직도 개통되지 않은 구간이 적지 않아 제구실을 못한다. 그래서 도로율이 월등히 높아도 평균 주행속도는 도로율이 더 낮은 도시에 비해 떨어지는 기막히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전시는 교통분담률에서 승용차 비중이 높은 점을 들어 대중교통으로 바꿔 타라고 강조한다. 대전 대중교통의 중심인 시내버스는 그러나 출퇴근 시간 평균 주행속도가 잘 나와야 시속 15㎞에 불과하고 정체가 심한 구간에서는 겨우 시속 10㎞를 넘어설 뿐이다. 그래서 승용차 차주들은 선뜻 대중교통으로 바꿔 탈 마음이 나지 않는다.

전임 시장, 전전임 시장 때 순환도로망을 완비하려는 노력이 미흡했음을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안타깝지만 지나간 일을 지금이라도 구현하려면 이번 대통령선거 주요공약으로 올라가는 것을 관철해야 한다. 이렇게 되어도 완전한 순환도로망을 갖추는데 2-3년은 족히 걸릴 텐데, 이번에 그게 안 되면 다시 5년을 원점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새 자동차는 1년에 약 1만 대씩 매년 급증할 것이다. 안 되면 결국 고통감내는 시민의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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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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