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소풍가기 전날이면 설레서 잠도 제대로 못 이루던 일이 생각난다. 새로 산 옷과 운동화를 머리맡에 두고 몇 번을 손을 뻗어 만지작거리다 잠이 들면 이른 아침 엄마의 도마 소리가 나를 깨웠다. 몇 가지 재료를 넣어 동그랗게 말아 한 입 크기로 똑똑 썰어 도시락에 담아내는 김밥은 소풍의 백미이자 집집마다 엄마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메뉴였다. 친구들의 김밥을 맛보면 비슷한 재료로 만드는 방법도 거기서 거기인데 어떻게 맛이 다 천차만별인지 신기했다. 갖가지 재료들을 어떤 조리법으로 누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음식이다 보니 요리사와 지휘자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지휘자 역시 같은 오케스트라(연주자), 같은 곡을 연주해도 누가 지휘를 하느냐에 따라 음악은 달라지니 비교할 만한 것 같다.

지휘자들 손에 늘 들려 있는 악보는 연주자에 비해 유독 두껍다. 연주자들은 해당 악기의 악보를 보고 있다면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연주하는 악보를 한눈에 본다. 다양한 빠르기말이나 작곡가의 의도가 적혀 있지만 지휘자의 감정이나 성향에 따라 표현해 내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요리사도 각 재료를 요리의 특색에 맞게 칼질의 방법, 익히는 정도를 다르게 한다. 정적인 사람과 동적인 사람에게 `춤추듯이`는 큰 차이가 있을 것처럼 흔히 말하는 감이나 성향에 따라 음악과 요리는 다양하게 표현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즐겨보는 요리 프로그램 중 연예인의 냉장고 속 재료들로 정해진 시간 안에 여러 명의 셰프들이 서로 대결하며 요리를 만들어내는 프로가 있다. 아무리 봐도 김치볶음밥이나 나올 법한 냉장고 속의 변변치 않은 재료들로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메뉴들을 선보인다. 오케스트라에서도 실력 있는 지휘자를 갈망하는 하고 스타 지휘자 모셔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케스트라에서 음악적으로 변화를 꾀할 때 백여 명이 되는 단원들을 하루아침에 바꾸지는 않는다. 색깔이 다른 지휘자만 오면 전혀 다른 단원들이 앉아 있는 것처럼 음악도 변화한다.

주방을 지휘하는 요리사, 오케스트라를 요리하는 지휘자는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음악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닮은꼴의 사람들이다. 이은미 대전시립교향악단 기획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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