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가의 작용은 법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원리이다. 지금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근대 이전은 법의 지배가 아닌 사람에 의한 지배가 관철되던 시대였다. 법치주의 또는 법의 지배라는 원칙은 권력의 자의적 지배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국가의 작용을 시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구속되도록 하려는 이념인 것이다.

다만 오늘날에는 사회가 급격히 발전함에 따라 행정도 전문화되고 있어 의회의 입법능력이 이를 미처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법률의 제정에 있어 행정부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한편으로 행정의 대상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행정부에 일정한 범위의 재량권을 부여하는 예가 많다. 이처럼 행정권에 재량이나 판단의 여지가 인정될 경우 법치행정의 원칙은 어느 정도 완화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문제 될 수 있는 또 다른 논점은 이른바 통치행위라는 개념이다. 즉 통치행위는 정치적 성격이 강한 것이라 법의 규율을 받거나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논리이다. 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비상계엄의 선포나 국민투표의 실시, 국제조약의 체결, 해외파병, 사면 등이다. 이처럼 법치국가에서 법적 통제에서 벗어나는 통치행위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대립하는 학설이 존재하는데, 우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과거 몇 몇 사례에서 이를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통치행위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국가의 존립이나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인 때에는 사법적인 심사나 국민의 저항권 행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서 법의 지배를 관철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원칙을 구현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균등`을, 제11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예로부터 `백성은 가지지 못함이 아니라 고르지 않음에 분노한다`는 말이 있다. 국민은 법이 엄한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원망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평등의 원칙을 경제적인 분배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기에 앞서 법적인 평등의 측면에서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모두 법 앞에 평등한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변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법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인식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법의 규율을 피하기 위한 탈법과 위법을 만연하게 하며 결국 그로 인한 손실과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 자신의 몫으로 남게 된다. 우리 사회를 `헬조선`으로 부르는 풍조의 저변에는 법의 적용이 국민들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무시해선 안 된다. 우리의 평등의식은 국민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겪어온 역사의 소산이다. 진실로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헌신하려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최지수 최지수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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