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살아있다] ⑧ 교과서박물관

철수와 영희! 오늘날 중늙은이들이 듣기만 해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고향에 두고 온 소꿉친구 같기도 하고, 내일 모래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면 꼭 만나게 될 것만 같은 이름이다.

이런 철수와 영희를 만날 수 있는 박물관이 세종시 연동면에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주)미래엔이 운영하는 교과서박물관이다.

박물관은 2003년 9월 24일 개관해 14년째를 맞고 있으며 100년간 교육현장에 사용했던 교과서들이 잘 보존돼 있다. 19세기 말 교과서에서부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까지 전시돼 있다.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들이 많지만 아직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도 많다.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박물관으로 자리매김 = 시대별로 모든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으며 교과서 11만 권, 교육관계자료 5000점, 기타 교육관련 도서 8만 5000권 등 모두 20여 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11개국 5000여 권의 도서와 북한교과서 35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 미군정기, 교수요목기를 거쳐 1-7차 교육과정기까지의 교과서들이 보관·전시돼 있다. 또 옛 교실 등 우리나라 교육문화의 다양한 유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획전시관이 설치돼 있다.

학생들은 옛 교육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어른들은 추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박물관에는 유아부터 청소년, 어른들까지 연간 3만 명 안팎의 관람객이 찾는다. 특이한 것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이 교과서 박물관을 찾는다는 점이다. 지난해의 경우 2만 6992명이 박물관을 찾았으며 이 가운데 어른이 1만 2893명으로 가장 많았고 어린이 9443명, 청소년 4656명 순이다.

어른들은 교과서를 보면서 어린시절 추억을 더듬고 향수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아한다. 지역별로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충청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으며 경기도, 경상도 지역에서도 많이 방문하고 있다. 박물관은 교과서가 전시돼 있는 주전시장과 활자 인쇄기계 25점이 전시돼 있는 인쇄기계전시관, (주)미래엔을 홍보하는 미래엔관, 1년에 한두 번 기획전시를 하는 기획전시관으로 나눠져 있다.

◇역사의 흔적이 담긴 보물급 교과서들 = 주전시관에는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보물급 교과서들이 꽤 있다. 박물관은 올 1월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해 국보 320호로 지정돼 있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영인본을 소장하고 있다. 월인천강지곡은 조선 세종 1449년 지은 불교찬가로 용비어천가와 더불어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우리나라 최고의 가사집이다. 월인천강지곡 진본은 미래엔이 소장하고 있다가 2013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탁했다. 월인천강지곡은 1963년 보물지정 당시 영인본 200부를 발간했지만 이 또한 대부분 사라져 일반인들이 보기가 쉽지 않다.

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국민소학독본(國民小學讀本)은 1985년 음력 7월 학부에서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관찬 국어교과서로 오늘날 국정교과서에 해당된다. 근대적 교재제작을 위해 일본의 수신교과를 참고해 편찬했으며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애국적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해방되던 해인 1945년 11월 조선어학회에서 편찬해 군정청 학무국에서 발행한 한글입문교본인 `한글 첫걸음`도 귀중한 자료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글 활자가 사라져 이를 모으고 종이를 구하느라 해방후 3개월이 지나 발간했다. 여기저기 활자를 모아 꿰어 맞추기 식으로 제작하다 보니 이 책자는 글자마다 크기다 다르다.

신정심상소학(新訂尋常小學)은 1896년 2월 학부 편집국에서 편찬한 초등학교용 국어교과서로 일본인이 직접 교과서 편집에 참여한 사실이 밝혀졌다.

◇스토리 텔링식 국어책 1981년까지 지속돼 = 세간에 잘 알려진 `바둑이와 철수`는 1948년 문교부에서 발행한 초등학교 최초의 국정교과서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교과서로 전국에 3-4권밖에 없는 것으로 추정돼 KBS 진풍명품에서 200만 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바둑이 는 꽃밭 으로 들어갑니다./ "바둑 아, 이리 와 이리 나와."/ 철수 는 말했습니다./ 바둑이 는 꽃밭 에서 나왔습니다./ "바둑 아, 꽃밭 에 들어가면 안 돼." / 영이 는 말했습니다.

A4용지 절반크기의 교과서는 특이하게도 모든 조사에 대해 띄어쓰기를 했다. 해방 직후 78%나 되던 문맹률을 줄이기 위해 `바둑이와 철수` 교과서를 국문교육용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철수와 영이가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식으로 전개된 시기는 1963년 까지 이다. 1963-1973년 발행된 국어 교과서의 주인공은 인수와 순이로 바뀌고 1973-1981년 발행된 국어책에는 기영이와 순이가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교과서의 `철수와 영희`는 사실과계를 확인해 보면 `철수와 영이`이며 이들로부터 시작된 스토리 전개식의 국어책은 1981년 국어, 사회, 도덕을 묶어 바른생활로 바뀌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950년대의 교과서는 심상치 않다. 1951년 부산 피난시절 묘심사에서 초등학교용 전시생활 9종, 중등학교용 전시독본 3종을 발간했다. 당시의 교과서 제목은 `싸우는 우리나라`, `비행기`, `군함`, `탱크` 등으로 전시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물자절약 차원에서 책의 크기를 대폭 줄여 역대 가장 작은 교과서를 만들었다.

인쇄기계전시실은 1940-1980년대 미래엔에서 사용한 기계 25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동기를 사용해 단일활자를 연속적으로 주조하는 기계인 자동활자주조기, 활자 자모를 조각하는 기계인 벤튼자모조각기, 인쇄 마지막 단계에서 맞춤법 오류나 글자가 깨지는 것 등을 바로잡는 활판교정기 등이 있다. 철수와 영이의 교실에는 그때 그 시절 철수와 영이가 공부하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기도 했다. 낡은 나무책걸상과 칠판, 장작을 때던 난로와 추억의 양은 도시락을 만날 수 있다. 은현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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