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호흡기내과에 입원한 환자들에 대한 브리핑이 시작된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날 진행된 검사 결과는 어떤지, 오늘은 어떤 치료와 검사를 진행해야 하는지 결정한다. 몇 시간이긴 해도 밤사이 중환자들이 잘 견뎌냈는지 궁금하다. 어제 보다 나아져있기를 기대하며 환자의 흉부 사진을 열어본다. 컴퓨터에서 자료를 가져와 사진이 열리는 시간, 몇 초. `제발, 제발`이라는 말이 속에서 맴돈다. 누가 보면 그날이 그날인 것 같은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눈동자를 굴리며 공기 대신 염증과 물이 차 뿌예진 환자의 폐를, 어제보다 나아진 곳이 있나 비교해본다. 호흡기내과에서는 외과계 선생님들처럼 말썽을 일으키는 부분을 싹둑 잘라내 주거나 새것으로 바꿔줄 수 없다. 그저 환자가 스스로 병과 싸우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 줘야 한다. 그날그날 환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확인하며 조절해줘야 한다.

항생제가 부족하다 싶으면 항생제를 올려주고, 전해질이나 호르몬이 부족하면 채워준다. 환자들의 증상과 검사 결과를 분석하며 원인을 찾아내고 교정해줘야 한다. 조절할 수만 있어도 다행이다. 어떨 때는 결과에 따라 각각 상반된 방향으로 약물을 조절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폐와 몸은 부어서 수분을 빼줘야 하는데, 혈액검사 결과는 탈수라며 수분을 채워 달라 한다. 참 난감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도 종종 있는 일이다. 폐렴은 이생을 마감하는 관문과도 같은 병이라 다른 병들과 얽혀 있다. 폐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여기저기 다른 문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환자가 많아 이 과 저 과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장기 문제를 해결해야만 폐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심장 기능에 문제가 생겨 폐가 부었다면 심장을 해결해야 하고 다른 장기에 염증이 생겨 폐에 2차적으로 염증이 생겼다면 원인 장기를 치료해야 한다.

폐의 문제로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면 `폐는 참 줏대 없는 장기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 장기가 나빠지면 덩달아 폐에도 변화가 생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다른 과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호흡기내과에는 중환자실에서 치료해야 하는 환자들도 있다. 중환자들은 늘 이것저것 치렁치렁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 생명줄과도 같아 빠지면 위험한 것 들이다. 스스로 숨을 쉴 수 없으니 인공호흡기가 환자의 폐와 기관 삽관 튜브를 사이에 두고 연결돼 있다. 약물 및 수분, 영양공급을 위한 중심 정맥관, 식이를 위한 콧줄 등도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정말 숭고해 보이리만치 눈을 지그시 감고 인내하는 환자들이 가끔 있다.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너무나도 힘든 시기라 의식이 명료하지 않은 환자들이 더 많다. 괴로워 몸부림친다.

이 와중에 뭐라도 빠질까봐 환자들은 거의 손과 발이 침대에 묶여 있다. 회진을 가면 그중 의식 있는 환자들이 날 좀 풀어달라고 하소연하듯 애절한 눈으로 바라본다. "위험해서 안 돼요"라고 하지만 괴롭다. 마음이 약해져 잠시 손을 풀어주고 지켜본다. 그동안에도 순간적으로 손이 기관 삽관 튜브로 올라간다. 깜짝 놀라 얼른 제지하고 다시 묶어 달라 한다.

하루하루, 아니 어떨 때는 매시간 시간 환자들은 사투를 벌인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뇌 손상이 있는 환자, 나이가 너무 많은 환자, 수년째 의식도 없이 누워만 지내는 환자들이 폐렴을 얻어 입원하는 단골 환자들이다. 어느 누구의 생명이든 소중한 것이지만,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리는 것이 정말 환자와 가족을 위한 최선이 맞는 것일까 항상 고민된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영원히 결론을 못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열심히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혈압도 호흡도 유지되지 않아 이것저것 꽂고 연결해 치렁치렁 줄을 매달고 있던 환자가 하나씩 하나씩 불필요해진 줄을 제거하고 스스로 숨을 잘 쉬어 일반 병실로 내려간다. 좀 더 좋아져 요양병원으로 전원 가거나 집으로 퇴원한다. 조만간 처음과 비슷한 모습으로 다시 중환자실에서 만날지언정, 그렇지 못한 환자들도 많기에 퇴원은 항상 반갑다. 박지원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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